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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대화1. 민경

🗓️ 2025.10.19

 

림보

질문이 좀 괜찮았어요? 이런 걸 한다고 했을 때 기대했던 질문이었을까요?

 

민경

근데 기대하는 바가 엄청 뾰족하지는 않았어요.

 

림보

‘관객이랑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게 느껴졌을까요? 전 아직 감이 안 와요.

 

민경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이 쌓이면 그제야 알 것 같아요.

 

림보

맞아요. 질문을 이것저것 드려놔서 어떡하나 싶기도 하네요. 일단 정말 감사하고··· 올해 처음 뵀는데 너무 많은 부탁을 드린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민경

재밌어요. 질문 이제 하려고요?

 

림보

해야죠. 좀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왜 민경이랑 얘기하고 싶었냐면, 만나서 (함께 참여한) 작업 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재미있었어요. 또 상대적으로 영세한 프로덕션, 혹은 극단 연극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민경은 인디 연극이라고도 하는, 그런 공연만 보는 지인은 처음 만나봐서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접근성 연구로 석사 과정을 하고 있잖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처음부터 연구, 혹은 접근성 요소 때문에 연극을 보기 시작한 건 아니지 않을까 싶었어요. 연극 본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잖아요. 처음 재미를 느낀 계기가 있어요?

 

민경

이런 거(연극) 한참 안 보다가··· 사실 학부 때는 아예 안 봤어요.

그러다가, 극장 이름도 기억 안 나요. 서양 고전 문학 수업을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들었는데 그때 셰익스피어 희곡 몇 개를 읽었거든요. 솔직히 고전이라서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림보

뭐가 재밌었어요?

 

민경

낭만에 젖어가지고 미쳐 있는 말투가요. 물론 그 시대에는 그게 자연스러웠겠지만, 지금 듣기엔 너무나 부자연스러운데도 그게 좋았어요. 정확한 대사가 기억은 안 나는데, ‘사랑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는가 사랑에 눈 먼자여’ 이런 대사가 현실이랑 되게 동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아서 재밌었어요. 그렇게 옛날 희곡들을 읽는 것에 조금 맛을 들이고 있다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재구성한 연극을 봤는데요. 극장이 어디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되게 작았어요. 방 모서리에 의자가 일렬로 있고, 그 가운데서 배우들이 연기를 했어요. 종로3가 근처 정말 구석진 곳에 있었는데, 그때는 작품에 압도됐다기보다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압도가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눈앞에서 살아 넘치는 에너지를 누가 이렇게까지 분출하고 있는 거요. 가까이서 보니까 압도가 확 돼버려서 거기에 매력을 느꼈어요. 그 이후로 연극을 막 적극적으로 보진 않았어요. 춤추는 허리1) 공연은 가끔 봤고요. 장애 인권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가 활동 판에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약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연극도 활동일 수 있지만요. 선전전2) 나가 봤어요?

1) 장애여성공감의 극단.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을 배제하는 사회적 기준과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장애여성 인권운동 단체이다. 춤추는 허리의 단원들은 연극을 통해 장애가 있는 몸과 젠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장애인 배우의 정체성과 노동을 고민한다. (설명 출처=프로젝트 궁리. (2023.2.22). 현장탐방: 예술해볼라GO - 극단 춤추는 허리. 웹진이음. https://ieum.or.kr/user/webzine/view.do?zn=40&idx=498)

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및 권리예산 확보를 위해 행하는 시위 활동을 말한다. 민경이 언급한 선전전은 지난 2021년 12월 3일부터 이어져 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다. 선전전의 구체적인 목표와 일정 등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https://sadd.or.kr/home)

 

림보

아직 안 나가 봤어요.

 

민경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활동1)하면서 몇 번 갔었는데 뭔가 예산이라든가, 집중해서 같이 이야기를 해야 되는 주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더 입체적으로 얘기를 못 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춤추는 허리의 연극을 보면서 장애예술 장르, 특히 그중에서도 연극에서 그걸 좀 해소할 수 있다는 창구를 발견한 느낌. 그래서 이후에 아예 연극을 많이 보게 된 것 같아요.

1)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활동을 말한다.

 

림보

장판(장애인운동판)을 향한 관심에서 연결됐다 보니까 비슷한 성격의 공연을 더 많이 보는 것도 있겠네요.

 

민경

그것도 있어요. 그리고 꾸준히 보게 된 지 2년이 채 안 됐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아직 뭔가 장르를 못 넓혔어요. 녹음하기 전에 소설 얘기도 잠깐 했는데, 한창 읽을 때 2년 동안 한국 소설만 읽었거든요. 거기서 좀 파악을 한 다음에 한동안은 세계 문학만 또 왕창 읽고 이랬어요. 물론 병렬 독서지만. 연극에 있어서는 아직 장르를 넓히지 못한 것 같아요. 근데 갈증은 계속 있어요. 이런 퀴어 페미니즘 연극에서도, 한계를 느낀 것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종류의 자극을 느끼고 싶어요.

 

림보

최근에 변방연극제 〈노아의 나라〉 같이 보고 대화할 때도 ‘다른 연극’ 소위 말해 상업극 아니면 제작사 연극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비슷한 맥락일까요?

 

민경

창작극은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저항 혹은 연대로서의 기능이 좀 강해지는 것 같아요. 필요한 지점도 있죠. 그런데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힘이 되면서도  엄청 지치는 일이기도 해요. 게다가 그걸 잘하는 게 되게 어려워서 잘못하면 되게 나이브하게 말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나이브한 비판은 이제 화가 나요. 연극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을 볼 때요.

 

림보

예를 들어줄 수 있어요?

 

민경

엊그제 무슨 북토크를 갔어요. 그분이 AI를 향한 비판 의식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것 같더라고요.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던 부분이 분명히 있어보였어요. 그런데 정작 하는 말은 알고리즘이 우리의 진짜 체험을 가로막는다 이런 종류인 거예요. 공감은 가지만 이렇게밖에 말을 못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고리즘을 통해서 한 체험은 그럼 체험이 아닌가? 시선이 넓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깊어지는 다른 종류의 체험은 어떤가, 이렇게 얘기를 할 수는 없나 싶었어요.

공연장에서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만 있는 거에 대한 비판도 있었는데요. 그분은 한 문장 정도로 비판하고 넘어갔는데 그것도 너무 나이브하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라이브니스(liveness)에 대한 논문을 읽었거든요. 내가 찍은 영상을 다시 봤을 때, 실시간 송출은 아니지만 그 현장에 있는 내가 담은 앵글이라는 것에서 오는 게 있고, 현장감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분은 이것에 대해서 ‘진짜로 지금 여기를 느껴야지’라고 말한 거죠. 거기에 우월성을 부여하고요. 물론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해요. 동의하는데, 매개된 것에 대해 너무 쉽게 부정적으로 말하는 게 화가 났어요. 어떻게 보면 연극에서도 어떤 지점을 되게 쉽게 말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본 작품으로 예시를 들게요. 돌봄 로봇에 대한 연극이었는데요.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대사가 나왔어요. ‘그치만 꼭 사람이 해야 하는, 사람밖에 할 수 없는 게 있잖아.’ 그런데 정작 그 연극에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뭔지 아무것도 제시가 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전체 흐름을 봤을 때는 메시지가 완전 정반대였어요. 돌봄 로봇이 충분히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그 기능을 너무 착실하게 수행해 나가는, 서로 의존을 해 나가는 이야기였는데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싶더라고요. 그냥 멋있는 한 문장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 이런 회의감이 들었어요.

 

림보

말한 것처럼 퀴어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공연을 더 만나고 싶긴 하네요.

 

민경

퀴어 집단 안에서도 퀴어 혐오를 엄청 심하게 할 때가 있잖아요. 한 인물이 퀴어로서만 그려지거나 아니면 하나의 캐릭터만 가진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인물의 다양한 면을 비추는 공연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보는 양이 적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 또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여성 혐오가 엄청 심한 경우도 있고요.

퀴어 집단 안에서 서로 혐오하는 거 말고도, 개인이 피씨한 취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또 정상권 안에 들고 싶어 하는 욕망도 같이 존재하는 그런 다양한 면을 보고 싶어요. 그런데 당장은 이 주제가 씬 안에서 엄청 많이 다뤄지는 게 아니고, 좀 더 선언하고, 우리의 입장을 확실하게 말을 해야만 하는 단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직 다양한 캐릭터나 다양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 시기상조인가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걸 정체성 정치랑 연결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정체성 정치의 한계요. 같이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야 되는 시기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 안에서 서로 다른 면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분위기 같은.

 

림보

사실 뭉칠 수가 없잖아요. 이 프로젝트도 사실 관객은 하나의 집단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거든요. 비슷한 맥락 같고 공감돼요.

 

민경

비평가들 사이에서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 혹은 정체성 정치 그다음을 말하는 목소리가 예전부터 많이 있어왔지만 여전히 우리가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요. 그게 참 뭐라고 하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가 필요하기도 해서요. 동시에 그 한계가 사실 명확하기도 하잖아요. 마주했을 때 지치는 지점들이 많아요.

 

림보

좀 다른 얘기지만 그렇게 선언하는 연극이라고 해서 관심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번역극 중 퀴어 연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들 보면서 느낀 게 있는데요. 이걸 보고 있다고 해서 다 퀴어 프렌들리한 게 맞을까? 싶었어요. 당사자도 있겠지만요. 혹은 왜 어떤 사람들은 이건 보고, 아르코에서 하는 한국 퀴어 연극은 안 볼까? 이런 생각도 해요.

한편으로 시기상조일 수도 있겠다고도 느낀 게, 큰 극장에서 하는 연극을 봤거든요. 그때 객석과 불화하는 경험을 했어요. 극장 특성상 초대표도 많았을 거고 연극을 많이 보지 않는,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인지 퀴어 인물이 나와서 커뮤니티에 대한 농담을 하니까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고 있고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게 확 느껴졌어요. 또 다른 때 본 공연에는 지정 성별이 같은 배우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객석에서 너무 놀라는 거예요. 진짜 너무. 그래서 아직도 그 단계가 아닌 건가 싶었어요.

 

민경

여러 층위가 있는 것 같아요. 상업극이라고 여겨지는 혹은 컴퍼니극에서의 정말 소재로서 다뤄지는 퀴어 혹은 페미니즘이 있을 테고요.

 

림보

사실 그런 공연에서 좋은 장면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해요.

 

민경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고 해도 동화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관객이 소재로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 거 같아요.

 

림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퀴어 연극 위주로 비평하시는 분들이 그런 공연에서 좋음을 별로 끌어내고 싶어 하지 않고, 하려는 시도(퀴어적으로 깊이 읽어내려는)를 별로 안 하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지면에 올라오는 글들 읽는 거 좋아하는 입장에서요.

 

민경

또 소극장이나 공공극장에서 하는 공연에서도 한계를 느끼잖아요. 아까 말한 것처럼 그들은 또 선언을 해야 되니까. 거기서 오는 부족함이 있죠.

결국 내가 원하는 이야기는 글로밖에 주고받을 수가 없는 건가 싶기도 해요. 왜냐하면 위험이 있잖아요. 카톡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것을 글이나 만화로 생산하고 보는 것과 연극이라는 형태로 배우가 직접 발화하는 건 위험성이 완전 다르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퀴어(민경 본인 포함)가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부분도 있고, 정상성 집단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 마음을 내 안에서 키우며 생겨나는 퀴어포빅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죠. 그걸 엄청 부러워할 수도 있고요. 그런 종류의 이야기나 완전 언피씨한 생각은 배우가 직접 발화했을 때 욕을 먹을 위험도 크잖아요.

 

림보

그럼 ‘취향이 피씨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아니면 아예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말해줘도 돼요.

 

민경

제가 단순히 피씨한 연극이 싫어라고 말을 하는 입장은 아니고요.

 

림보

그쵸.

 

민경

남들이 보기엔 진짜 피씨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래디컬하고 이런 사람일 수도 있단 말이죠.

민망할 정도로. 피씨하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피씨에 씌워져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하나의 메시지를, ‘이렇게 해야 해’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특정 주장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줘서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거나 하는 것 같아요. 전 피씨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되게 복잡하게 말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하면 피씨 이야기도 좋아하고··· 뭐가 옳은 거지 뭐가 맞는 거지,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연극이 좋아요.

 

림보

공감해요. 저도 비슷하게 이 상태와 저 상태가 그냥 같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연극이 좋거든요.

연극이 그런 얘기를 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고 왜냐하면 선언만 들을 거면 사실···

 

민경

시위 가시면 되고.

 

림보

네. 물론 정말 세련되고 좋은 방식으로 선언하는 작품도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끌리는 건 그렇다는 거죠. 또 사람이 원래 다 복잡하잖아요. 이랬다저랬다 하고.

 

민경

근데 그런 작품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소수자 이야기를 다룰수록 더 명확하게 얘기를 해내려고 하잖아요. 일단 오해를 푸는 게 급선무고. ‘우리 있어요’부터 알려줘야 해가지고.

 

림보

언제까지 알려줘야 할까요.

 

민경

우리에게 이런 면도 있어요를 보여줄 때가 아닌가 봐요.

그래서 문학이나, 글에서는 되게 도발적인 작품도 최근에 번역 많이 됐잖아요. 『디트랜지션, 베이비1)』도 그렇고. ‘생방송 여자가 좋다’ 팟캐스트에서 표현한 예시로는 ‘야 조용히 해! 이런 거 우리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지’ 이런 거요. 이런 말해도 되나 싶은 얘기들을 하는데 아직 연극에서는 그런 시기가 아닌가, 그 정도의 생각이에요.

1) 토리 피터스의 소설. 책의 정보는 이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림보

가끔 번역극을 보면서 그런 걸 느끼는 것 같기는 해요. 그렇다고 해외 대본을 치켜세우려는 건 아니고요. 다른 식의 접근이 있기도 한 것 같아요.

 

민경

연극이 사실 실제로 무대에 나와서 하는 거다 보니까 한 인물을 복잡하게 말하기 되게 좋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사실 장애연극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시위에서 말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삶이라든가 복잡한 지점들을 드러내는 것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거든요. 그거에 매력을 느껴서 시작했으면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게 재밌네.

 

림보

이 몸이 그냥 내 앞에 있어 버리니까, 그 몸이 극 중에서 하는 선택을 피할 수가 없고. 그 선택들이 어떻게 보면 되게 상반됐는데 둘 다 좀 맞기도 할 때 재밌잖아요. 공감도 되고.

 

민경

그래서 여기 (답변 준비하면서 노트에) 그렇게 써놨어요. ‘뭐가 옳지에 대한 고민은 이게 옳다 다음에야 올 수 있나’ 근데 ‘이게 옳다’를 말할 때도 복잡한 심정을 말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림보

만드는 사람도 아닌데 혼자 이렇게 연극 고민하는 게 약간 웃긴 것 같기도 해요. 내가 한다고 해결되는 고민이 아닌데··· 그래도 관객으로서 다양한 걸 보고 싶으니까요.

 

민경

전 뭔가 개운치 않고 연극을 봤을 때 불만을 가진 지점이 있으면 그걸 언어화해야 직성이 풀려요.

별로였는데 함부로 안 좋다고 말할 수가 없다 보니까 계속 혼자 복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림보

아까 녹음 전에 〈야만의 시대1)〉라는 창작산실 작품이 그런 의미에서 좋았다고 했잖아요.

1) 이주영 작, 이수림 연출.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더한 속물도 될 수 있어! 러브버그로 시작된 등교 거부 사태. 이면에 드러나는 차별과 혐오는 부모들의 민낯이다. 누군가는 아이를 잃고, 누군가는 아이를 품지만, 모든 게 '좋은 부모' 노릇이란다. 안전한 학교라는 이름 아래, 아이에게 철저히 야만적인 모성의 욕망을 목도하자. (출처=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민경

〈야만의 시대〉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에게도 함부로 왜 저래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동시에 일부러인지 모르겠지만 ‘왜 저래’ 싶은 포인트가 다 있었고요. 악성 민원을 넣는 사람도 그렇고, 어떤 유난을 떠는 학부모들도 그렇고, 중국인 학생들에 대한 거리낌을 느끼는 학부모, 그런 학부모들을 비난하면서 은근히 우월감을 느끼는 학부모, 다 ‘왜 저래’ 싶은 면이 있지만 조금씩 이해가 가요. 함부로 왜 저러냐고 할 수 없는 사연이나 장치들을 다 심어놔서 보면서 너무 괴롭고 기쁜 거예요.

명쾌하게 이 사람 진짜 나쁘다 욕을 하면서 보거나 저 사람이 너무 잘 됐으면 좋겠다라고 응원을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계속 끌고 가면서 봤거든요.

그게 너무 힘들고 좋았어요. 쾌감이 느껴지고.

 

림보

그럴 때 ‘나 좀 피씨하지 못한 걸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아니면 피씨를 말하려고 언피씨를 경유할 수도 있기는 하잖아요.

 

민경

〈야만의 시대〉를 예시로 들면 피씨하다 혹은 언피씨하다 어느 종류에도 끼지 못하는 거죠. 질문이 뭐였죠?

 

림보

‘나 사실 이런 것까지 보고 싶어’ 하는 게 더 있는지요.

 

민경

그런데 피씨나 언피씨를 생각할수록 이 단어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 답변을 고민하면서 들었던 생각인데요. 퀴어들 안에서의 못난 모습이나 서로를 혐오하는 모습이 피씨하거나 언피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이 단어에 맞춰서 내 취향을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단언하는 연극과 단언하지 못하게 하는 연극이라고 분류해서 얘기를 했고요.

 

림보

맞아요. 저도 질문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피씨라는건 원래 고려돼야 하는 게 맞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 단언할지 말지, 어떻게 말할지 선택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민경이 말한 대로.

 

민경

‘Political Correctness’라고 했을 때 뭐가 코렉트니스고, 우리가 어디까지 성취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피씨를 베이스로 하면서도 단언하는 뉘앙스가 아니라, 충분히 첨예하면서도 저항적인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피씨에 명확한 답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게 문제같아요.

 

림보

편의를 위해 피씨하지 않은 취향이라 표현했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아까 〈야만의 시대〉 설명 들으면서 한 생각인데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좋다고 했잖아요. 저는 또 그냥 불가해한 사람, 이유 없이 그냥 그런 사람을 무대 위에 세워놓고 어떻게 함께 살지 묻는 공연도 보고 싶어요. 연결될 때 오는 기쁨도 있지만, 나랑 너무 다르고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상정된 사람들도 어쨌든 존재를 하니까요.

 

민경

완전 동감이고 예를 들면 갑자기 정치 얘기로 넘어가긴 하는데, 이준석을 누가 지지한다라고 했을 때 그러면 안 되지 그런 사람을 상종도 하지 말아야지라고 말을 당연히 쉽게 할 수 있겠지만, 내 친구가 그러고 있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러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대화를 해보면 대화가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고요. 최근에 느낀 건, 말이 안 통하는 존재를 완전 배척해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할 경우 오히려 그 대상을 추상화하고 악마화하고, 훨씬 더 그 대상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존재인지와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한 위험성을 너무 느껴요.

 

림보

또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이준석을 지지한 사람들)로 시작하지만 그 대상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혐오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로.

 

민경

여자만 나오고 퀴어만 나오고 이런 것보다도, 우리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존재들, 그런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지내는지에 대한 연극을 보고 싶어요. 나쁜 사람으로만 그려지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게 그려졌으면 좋겠어요. 근데 제가 아직 부족해서, 2차 창작까지는 아닌데 혼자 막 망상을 펼치고 보충을 해 나가기도 해요.

 

림보

망상을 한다는 게 그런 인물을 두고 상상을 해본다는 거죠?

 

민경

네. 예를 들면 최근에 복숭아꽃 립스틱··· 제목이 기억 안 나요. 말린 고추 립스틱 복숭아, 이거 세 가지 키워드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림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1)

1) 서동민 작, 강훈구 연출.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우악스러운 할머니와, 남편과 사별 후 자식에 집착하는 엄마, 그들의 편애를 독차지하는 오빠까지. 재수생 은빈에게 가족은 고추 말리는 냄새 가득한 낡은 빌라처럼 쿰쿰하다. 은빈이의 목표는 지방대 치대에 합격하여 독립하는 것. 열과 성을 다해 독립의 꿈을 키워가던 은빈은, 어느 날 제 복숭아향 립스틱이 자꾸만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만 보니 머리가 나만큼 길고, 어려서부터 만화 세일러문을 좋아했던 우리 오빠가 의심스럽다. 과연 은빈이는 지긋지긋한 가족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출처=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민경

맞아. 트랜스인 오빠가 있고 (대충 시스젠더 헤테로로 추정되는) 여동생이 있고, 엄마랑 할머니가 나오잖아요. 가족들이 오빠의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됐을 때 그 오빠에 해당했던 인물을 막 싸잡아 죽일 듯이 하거든요. 엄마나 할머니는 그걸 그냥 못 받아들이는 존재로만, 속상해 미치겠는 존재로만 그려져요. 와중에 엄마는 집안일을 하면서 집안을 지키려고 한다는 식으로 묘사가 돼서 사람들이 그래도 엄마는 조금 입체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엄마한테 마음이 간다 이런 사람들이 그나마 있긴 했거든요.

제일 서사가 덜 나온 게 할머니였어요. 그래서 저는 혼자 상상을 하며 할머니랑 오빠를 동일시했어요. 왜냐하면 할머니가 연극 시작할 때 립스틱을 바르고 있거든요. 밥 먹기 전에. 어머니랑 여동생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계속 꾸밈을 수행하는데, 자기만족으로 계속 자기를 꾸미고 바꾸는 게 할머니랑 오빠밖에 없어서 둘이 되게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빠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엄마가 충분한 힌트를 주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바로 그냥 가위를 건네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잘라버리라고. 그걸 보고 할머니는 사실 누구보다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눈치를 먼저 채고 있었을 수 있겠다라고 상상을 덧붙였어요. 그런 식으로 자급자족을 해요.

 

림보

설득이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계속 취향 얘기도 같이하고 있는데, 전에 카톡으로 대화하면서 팬심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랑 없는 사람이 나뉘어져 있다고 했잖아요. 저의 경우에는 창작진이랑 배우 둘 다 팬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여당극 팬이고. 민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좋은 정도이지 열렬한 상태는 아니라는 의미로 한 말인가요?

 

민경

연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제너럴한 고민으로 제가 자꾸 치환을 시키는 것 같은데 괜찮아요?

 

림보

상관없어요. 어떻게 또 연극 얘기만 해요.

 

민경

배우는 일단 없고요. 이 배우 자주 보이네, 이 배우 정말 매력적이다는 있는데 이 배우 때문에 봐야지는 아직 없었어요. 작가나 창작진을 따라가되 열렬하게 좋아하는 작가나 창작진이 있어서 그들의 것을 전부 다 본다기보다··· 아직 뭐 얼마 안 되기도 해서, 한 번 봤다가 재밌네 정도면 팔로우 했다가 다음에 또 보고 이 정도인 것 같아요.

근데 그걸 팬심이라고 부를 수 있나라고 했을 땐 잘 모르겠어요. 제 마음 안에 팬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팬이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림보

어떤 특성이 있죠?

 

민경

보통 연뮤덕들이 갖는 팬심에는··· 어쩔 줄 몰라 하거나 ‘당신을 열렬히 좋아한다’는 맹목적인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어떤 요소가 좀 방해가 된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을 정말 좋아해요’라고 하는 맹목적인 지점이 있어요. 근데 저는 ‘그 배우가 그 작품에서 연기를 정말 잘했지’ ‘이 작품 정말 이런 지점이 좋았고 이 작가 글을 정말 탁월하게 잘 쓰지’ 정도예요. 그게 한 사람 혹은 창작진에 대한 애정으로 커지거나 엄청 깊어지지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요.

 

림보

그 정의에 따르면 저도 저를 팬이라고 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민경

제가 유독 팬과 덕질에 대한 기준이 좀 높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를 해 봤을 때. 그래서 나는 팬이라는 것이 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구나를 느꼈어요.

 

림보

사람에 따라서는 그 정도 팔로업을 하는 것도 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저는 그래서 저를 팬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소식을 찾아본다. 그러니까 다음 스텝을 기다리는. ‘너무 기다려’ 이건 아니더라도요. 기다리고, 기대도 조금 한다는 것은 어쨌든 이 사람의 작업에 대한 애정이라고 느껴요. 아이돌 좋아했을 땐 좀 더 맹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연극을 머리가 크고 좋아하게 돼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거리 유지는 되는 느낌이에요.

그럼 전체 장르를 통틀어서 민경이 덕질을 했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어요?

 

민경

없어요.

그리고 더 예를 들면 저랑 친구가 리타랑 이반지하를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광주에 있는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라는 서점에서 하는 행사도 갔어요. 광주까지 간 거죠. 그거 보려고. 1박 2일로. 이 정도면 팬인가 싶긴 하지만··· 행사 끝나고 ‘진짜 팬이에요. 라이브 잘 보고 있어요. 퀴어방송 잘 보고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그게 입에서 안 떨어지는 거예요.

왜 그런가하면, 아직 답을 찾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나의 관계를 팬과 아티스트라고 관계를 규정지었을 때 그 관계에서 지어지는 경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관계 자체로서의 아름다움도 있지만요. 좀 더 담담하게 말하고 싶어요. ‘정말 좋았어요.’ 이렇게. 뭔가 내가 비평가는 아니지만 그냥 ‘나 님 공연 봤는데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어’ 라는 식으로요.

이거를 도서전 가면 출판사 편집자 분들에게는 정말 잘하거든요. 자주 만날 기회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그냥 말을 해 주고 싶어서도 있어요. 왜냐하면 말을 하면 힘이 난다는 걸 아니까. 뭔가를 만들거나 내 글을 누군가에게 읽혔을 때 그거에 대한 피드백을 진짜 원활하게 받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진심을 담아서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트페어나 도서전 가서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게 주어지면 꼭 말해 주려고 하거든요. 소통한다는 느낌으로. 그래서 좋아한다고 말을 할 때도 팬으로서 정말 좋아해요, 정말 사랑해요 이런··· ‘네가 듣지 않아도 난 말을 해줄게’ ‘난 너에 대한 이런 사랑을 계속해서 내비칠 거야’라는 느낌보다, 당신 정말 중요한 일 하고 있고, 너무 좋고, 나 진짜 잘 듣고 있다 힘이 된다, 이렇게 소통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이걸 팬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전 안 해요. 제가 생각하는 팬은 그런 종류의 존재가 아니어서요.

 

림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런 태도를 원하기도 하고요.

 

민경

논외로 빠질 수도 있지만 팬이라고 여겼을 때 위계가 지어진다고까지도 생각했어요. 서로에게 일단 솔직해질 수가 없는 거죠. 벽도 생기고 위계고 생긴다고 느껴요.

 

림보

솔직히 맞죠. 그러니까 같은 작업자로 만나지 않는 이상 생길 수밖에 없고, 애초에 1대 다니까요.

 

민경

내가 아티스트여도 누가 나한테 팬이라고 하면 그 앞에서 솔직해지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근데 이런 생각이 좀 길티예요. 너무 망상을 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우리가 동등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는 거지. 실제로 그렇지 않아요? 아닌가?

 

림보

그렇죠.

 

민경

모든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누구의 팬도 될 수가 없고, 동시에 이런 제가 좀 싫기도 해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느낌이라. 실제로 너무 좋기도 했는데 자존심 부리는 것일 수 있어서요. 그렇게 생각은 안 해봤지만. 아이처럼 당신 너무 좋아요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잘 못 해내고 있는 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건가라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노트에 자의식 과잉 이렇게 써놨어요.

그래서 저는 팬들, 덕질을 하는 사람들의 그런 맹목적인 특성과 대가를 바라지 않음과 자기를 다 내보이는 느낌, 그런 것들이 제가 지니지 못한 특성이고 영원히 지니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되게 부러워해요. 박탈감을 느낄 정도로.

 

림보

친구가 될 수 있다,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마음과 별개로 그런 맹목적임을 갖고 싶기도 한 거네요.

 

민경

낭만적이잖아요. 친구랑 저속하게 표현하기로는 ‘나는 영원히 빤스를 벗지 못할 거야’ 이렇게 말한 적 있거든요. 빤스를 벗은 사람들이 즐겁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죠. 영원히 움켜쥔 채로. 전 그냥 제가 그럴 수 없는 사람인 걸 깨달았어요. 근데 이것에 한계가 있다고도 생각해요. 빤스를 벗지 않았을 때 겪을 수 있는 감정이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훈련이 잘 안됐어요. 이제는 해도 안 되고요.

 

림보

연기가 좋았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는 했잖아요.

연기가 좋다라는 게 배우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 거네요.

 

민경

관심 정도인데 팬심은 아니에요.

 

림보

그럼 화제를 좀 돌려서 어떤 때 연기가 좋다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저는 배우의 화술에 엄청 감탄할 때도 있지만, 예를 들어 장애예술 작품 볼 때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말 막힘 때문에 생기는 정적이 정말 고유한 순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전날 이 배우 대사 한 번도 안 빼먹었고 유려하게 잘했어, 이렇게 감탄하다가 오늘은 사실 이래야 되지 않나, 연극에서 이런 걸 이런 순간을 더 많이 만나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제 안에 모순이 일어나요. 물론 둘 다 좋을 수 있죠 다른 방식으로. 근데 다름이 신경 쓰여요. 내 몸은 하나인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고민이 항상 있어가지고.

 

민경

저한테도 그런 거 너무 존재해요. 질문지에 ‘능란할 수 없고 능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이 진짜 같다’는 얘기가 있었잖아요.

정확히 어떤 지점이 저는 괴로웠냐면 그것이 추구해 마땅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사람을 봤을 때 감탄하는 걸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괴로웠는데··· 어쨌든 미술 사조에도 흐름이 있고 연극에서도 흐름이 계속 있잖아요. 보통 이전 시대에 반항을 하면서 다음 사조가 나타나고요. 바뀐 것이 이전에 대한 리플렉션(reflection, 반향, 반영)에서 나오는 거니까 다음에 온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기가 쉽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약간 골라 먹자 주의예요. 철학 사조가 쭉 있으면 그때그때 나한테 맞춰서 철학을 집어 넣듯이 연극도, 혹은 문학도, 혹은 미술도 그때그때 맞춰서 골라 먹으면 되지 않나라는 주의이긴 해요. 물론 충돌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김원영 선생님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에 언급된, 발레라는 장르에 대해 선생님이 느끼는 충돌 같은 것들이 엄청 공감됐어요. 진짜 첨예하게 나오잖아요. ‘나는 이 사람들이 말하는 종류의 클래식한 발레를 할 수가 없는데 그렇게 했을 때 발레는 차별적인 장르인가’라고 했을 때 완전히 장르 자체를 폄훼해 버릴 수는 없고요.

그림으로 예를 들었을 때는 민음사 디에센셜 시리즈 표지가 하이퍼리얼리즘 그림이잖아요.

사진처럼 그리는 것 자체가 유행이 지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람이 해냈다는 거에서 오는 감탄이 있죠. 사진이랑 아무리 똑같고 거의 99.9%의 카피 앤 페이스트라고 해도, 사람이 그렸다라는 것에서 오는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잖아요. 엄밀함을 수행해 냈을 때의 쾌감을 저버리고 싶지 않은 때가 있어요.

원초적으로 느껴지는 좋음도 있지만 전 많은 감정들과 희열이 학습에서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길을 걷다가 여름쯤에 생각한 건 참새가 총총 뛰는 게 너무 귀여운 거예요.

근데 왜 귀엽지 싶더라고요. 사실 귀여울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귀엽다고 학습을 받아서 나는 귀여움이라는 것을 총총 튀는 참새를 볼 때마다 느낄 수 있게 된 거예요. 뭐만 보면 좋다고 헤헤거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다양하게 학습해서 다양한 종류의 쾌감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게 엄밀성이랑도 좀 연결되는 것 같아요. 발레 동작 하나하나의 각도, 안정성 이런 걸 알고 있을 때, 또 그걸 완벽하게 딱 해냈을 때 오는 쾌감이 있는 것처럼, 연극에서도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서 완전 자기 걸로 만들고 자기만의 리듬과 캐릭터를 만들어 능수능란하게 해버리는 걸 볼 때의 쾌감을 지울 수가 없어요. 버릴 수가 없어요.

 

림보

맞아요. 버릴 수가 없죠.

 

민경

그렇지만 그것이 제일 가는 가치다라고 여기지 않는 시각이 필요하긴 하고요.

 

림보

저희 둘 다 그러니까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감탄하게 되는 부분도 어쩔 수 없이 있다.

 

민경

맞아요.

 

림보

그냥 아수라 백작처럼 살아가야 돼···

 

민경

맞아 다 떠안고 가야 돼.

 

···

 

림보

지금 거의 서울에 올 때만 공연을 보고 있죠.

 

민경

(공부를 하고 있는) 대전에서는 공연 거의 안 보는 것 같아요.

작년 변방연극제 할 때 구석으로부터라는 공간에서 구자혜 연출이 올린 〈오독하며 헤엄치기〉 본 거 말고는 경험이 많이 없어요. 제 기억상으로는. 그렇다고 대전에서 공연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강보름 연출님 작품도 꽤 대전에서 하는 편이에요. 재밌는 작품도 많고 예술의 전당도 있고요.

근데 어쨌든 볼 수 있는 연극의 수가 서울에 월등히 많다 보니까··· 왔을 때 문화생활을 다 해결하게 돼요. 또 대전에 혜화처럼 연극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모여 있는 공간이나 지역이 있는 것도 아니어가지고. 띄엄띄엄 안 가본 곳을 새롭게 가는 것 자체도 사실 피로한 일이잖아요. 서울 본가 근처에서 버스 타고 내려 극장 걸어가면 되니까. 혜화는 익숙한 공간인데 대전에서는 매번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새롭게 가는 게 좀 피로해서 더 안 가요. 극장도 다 퍼져 있고요. 무엇보다 이제는 좀 위험한 생각이지만 기대를 안 하는 것 같아요. 대전에서 좋은 작품이 뭐가 하려나라고 안 찾아보게 돼요.

 

림보

민경이 원하는 얘기가 없다라는 맥락일 수도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뭐가 올라와도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도 있는 거예요?

 

민경

그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 정도로 대전에서 어떤 작품을 하는지 많이 들여다본 적이 없어요.

보고 싶은 공연을 아주 드물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들을 보려면 되게 많은 조건들이 한 번에 딱 맞아야 된단 말이에요. 일정 같은 거요. 내가 대전에 있어야 하고, 혹은 평일이면 어떤 미팅이 없어야 하고 거기를 갈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림보

심지어 몇 번 하지도 않으니까.

 

민경

네. 그게 다 맞아떨어져야만 딱 볼 수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서 대전에서 매번 놓치게 되다 보니까 봐야겠다는 기대 자체를 안 해요. 다 찾아보지도 않게 되고, 대전에서도 작품 많이 해주세요라고 요청을 안 하게 됐어요. 그냥 이 서울 집중화 현상을 받아들여 버리게 되는 거죠. 그것이 매우 위험하지만 무력하게도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

 

림보

진짜 이건··· 해결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집중의 역사가 오래라. 물론 저도 다른 지역에서 하는 걸 본 적은 거의 없지만··· 그래서 이번 프린지페스티벌에서 민경이랑 김염지님 작품 보고 관객과의 대화 들었을 때, 염지님이 부산에서는 이렇게 길게 공연한 적이 없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뭐 연극할거면 다 서울에 와라 이럴 수 없고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민경

관성을 바꾸기가 너무 어려워요. 이미 모여 있으면.

 

림보

또 많이 생각하는 게 지역만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데요, 그러니까 필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혜화에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극장에서 공연이 올라가기 때문에 많이 가 닿지 못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이걸 한번 인식하게 되면 제 안에 계속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 같아요. 민경이 접근성 연구를 하니까 어쨌든 연구를 위해서라도 접근성이 잘 마련된 공연을 많이 보잖아요. 현장에 가서 했던 생각이 있을까요?

 

민경

진입 장벽에 대해서 잘 얘기하려면 연구 주제에 맞게 혹은 연구 주제와 관련되게, 어떤 장애 당사자가 연극을 보는데 장벽이 너무 많다는 얘기가 나오면 좋겠지만···

 

림보

꼭 접근성 얘기가 아니어도 돼요.

 

민경

접근성이 추가된 연극을 본다는 것은 결국 장애인 관객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관객에게도 다른 방식의 보기가 요구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비장애인 관객이 다른 방식으로 보는 방식을 배운다는 건 곧 장애인 관객을 인지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 배우랑 자막을 능수능란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보는 게 잘 안돼서 자막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많아요. 텍스트를 읽는 것이 훨씬 익숙해서요. 그래서 자막이 없는 공연을 가끔 보면 배우들을 다른 때보다 많이 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아요. 그리고 그게 가끔은 좋기도 해요. 동시에 좋아해도 되나 싶어지고요.

접근성 요소가 추가된 공연에 내가 익숙해지는 게 맞다라고 생각하니까, 자막 해설이 제공되지 않는 종류의 공연을 봤을 때 가능해지는 또 다른 종류의 감상 방식을 즐기는 나를 계속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림보

전에 이 이야기 해준 게 생각나요.

 

민경

근데 이제는 좀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자막 없이 봤을 때 내가 더 잘 보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그치만 이것이 곧 접근성 장치가 없는 공연이 좋다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어서··· 결론은 잘 모르겠네요.

 

림보

아니면 뭐 주위에 연극이라는 걸 볼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보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얘기를 해도 될 것 같아요. 어떤 환경적인 요인도 당연히 작용을 하고, 정보에 내가 접근할 수 있다라는 거, 아니면 연극에 매력을 못 느낄 수도 있고.

 

민경

주변에 연극 안 보는 사람이 더 많아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을 때 러프하게 말하면 애초에 문화 자본을 성실히 즐기지 않는, 문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게 이유가 될 수도 있겠죠. 저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연극은 안 보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책을 꾸준히 읽고 연극을 꾸준히 보려고 하지만서도 영화는 꾸준히 못 봐요. 영화를 잘 못 보는 이유를 옛날에 말했었나요?

 

림보

기억이 안 나요.

 

민경

책은 주도권이 나한테 있는 느낌이에요. 실제로 물성이 있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되게 많아요. 연극은 오히려 아예 주도권을 뺏기는 느낌이라 좋고요. 근데 영화는 좀 애매해요. 특히 OTT로 집에서 볼 때 애매한 점이 극대화돼요. 차라리 영화관 가면 괴로워도 다 볼 텐데. 이런 이유를 반추해 봤을 때 남들에게는 연극을 보면서 휩쓸리고 어딘가에 흠뻑 젖는 경험이 부담스러운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애초에 경험을 할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노잼인 얘기가 될 수도 있긴 한데 영화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원할 때 볼 수 있다 보니까, 보는 것도 활발하지만 비평이 되게 활발하잖아요.

영화 비평가들은 되게 유명하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으니까요. 근데 연극 같은 경우에는 재연을 언제 할지도 모르고··· 물론 코로나 이후에 온라인 공연이 많아지기도 했고 기록원에서도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만큼 당연하게 영상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그것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요. 그건 연극 본 거라고 할 수 없지 이런 사람들도 있다 보니까, 공유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은 것 같아요. 이 연극에 대해 얘기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너무 적어 가지고, 그 문화 자체가 잘 생성이 안 되는 것 같다.

다 같이 우르르 보고 누군가의 평을 듣고 나도 거기다 말 한마디를 얹고 이런 일 자체가 어렵다 보니까 장벽이 좀 생기지 않나 생각은 해요. 재미없는 답변이죠.

 

림보

괜찮아요. 질문이 재미없었던 것 같아요.

 

민경

근데 저 다른 종류의 장벽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상업극 장벽. 친구 따라 예스24···

 

림보

예스24 스테이지?

 

민경

네. 그거랑 놀 스테이지인가?

 

림보

링크아트센터요?

 

민경

링크 맞는 것 같아요. 연뮤덕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저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오늘 연극 보러 가기로 했는데 티켓이랑 굿즈만 받아 갈게라고 한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혜화 예스24스테이지나 링크아트센터 말고 홍대에서도 몇 번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티켓을 받으러 가는 친구를 따라 공연장을 가서 쭉 스캔을 했어요. 스캔했었어요. 근데 기가 너무 빨리는 거예요.

 

림보

어떤 종류의 기빨림이었죠?

 

민경

여자가 너무 많아.

 

림보

너무 웃기다. 하필 또 인기가 좀 있는 공연이었나 봐요. 왜냐하면 고요한 로비도 있거든요.

 

민경

다 너무 들떠 있다고 그래야 하나, 근데 이게 헤테로 여성들이라고 가정했을 때도 기가 빨리고요.

논외인데 이번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이반리 장만옥1)〉을 봤어요. 근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반리 장만옥 보러 가는 사람들인가 싶은 사람들이 막 있는 거예요.

극장에 퀴어 레이디들밖에 없었는데··· 좋아, 좋은데 기가 너무 빨리는 거야.

그 음기가 너무. 저 진짜 나올 때 이렇게 책가방 이렇게 양손에 꽉 쥐고 터벅터벅터벅 걸어갔어요.

왜 그럴까요. 왜 그렇게 기운이 빨렸을까요. 나 정말 연대하는데.

1) 이유진 감독의 장편영화.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레인보우를 운영하던 중년 레즈비언 만옥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가게를 정리하고 고향 이반리로 내려간다. 하지만 이반리의 이장으로 있는 전남편의 방해공작과 더불어 여전히 배타적이고 편견 가득한 고향을 맞닥뜨린 만옥은 이장 선거에 나가기로 한다. (출처=서울국제여성영화제)

 

림보

근데 막 예를 들어 아르코 로비도 붐빌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딱히 그런 걸 안 느껴요? 아르코만 말하는 건 아니고 나온씨어터 이런 델 갔는데 그런 분위기가 느껴질 때는 괜찮아요?

 

민경

그 정도로 과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느꼈을 때. 컴퍼니극 로비 갔을 때 압도됐던 장면은 공연 전에 프로그램 북 같은 걸 사려고 엄청 줄을··· 근데 이거 너무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가 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에요.

 

림보

그쵸 아니죠.

 

민경

팬심이라는 것에 대해서 복잡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전 팬심을 가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팬심을 표하거나 덕질을 하는 사람들, 대가 없이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너무 부러워하고 좋아하는데, 그거를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압도되고 기가 빨리기도 해요.

친한 사람이면 구경을 해요. 적극적으로, 머글로서.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 어떤 게 널 그렇게 미치게 해? 이러고. 아니면 지인이 동인지를 쓴다고 할 때 너무 재밌어요. 그런 덕후들을 보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코믹콘 같은 건 못 가겠다. 정말 그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느껴지는 어떤 에너지, 따라갈 수 없는 종류의 사랑을 내뿜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기가 빨려요. 그들의 문화가 너무 견고해서··· 같은 극장 안에 있지만 같은 걸 느끼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때가 있어요.

뮤지컬 〈삼색도1)〉를 한 번 봤었는데요. 엄청 돈을 많이 들일 수가 없었던 극이었던 건 이해하지만 조악함이 느껴지는 게 아쉬웠어요. 미니멀한 것과 조악한 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중간중간 조악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애초에 제가 뮤지컬을 수월히 받아들이는 종류의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말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잖아요. 그래서 조금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 여자를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과 중간중간 수상한(죄송) 중년 남성들이 있었거든요. 큰 대포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걸 친구에게 얘기했을 때 친구가 그 아저씨들을 안 좋게 얘기했는데 그건 또 싫었어요. 납작하게 말하기 반대 운동. 왜 네가 하는 연뮤덕 덕질은 괜찮고 그 아저씨들의 사랑은 왜 그런데, 어디가 그렇게 잘못됐는데, 했어요. 음흉하다 아니면 속이 뻔히 보인다라고 친구가 말하면 연예인 사업이랑 포르노랑 그럼 어떻게 구분하는데, 네가 무엇을 소비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이 전혀 포르노적인 특성을 띠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막 이러면서 싸웠어요. 어쨌든 기가 빨렸어요.

1) 현호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우지안 연출, 네버엔딩플레이 제작.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세 여인이 밤을 틈타 경복궁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간다. 한밤의 한양을 누비는 이들은 세자빈 ‘태애’와 궁녀 ‘소쌍’ 그리고 ‘단지’. 창덕궁 후원에서 비밀리에 기르고 있다는 코끼리를 보러 길을 나선 것이다. 세 사람은 성애적 관계로 얽혀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서 시간과 공간과 신분의 경계를 뛰어넘은 애틋함을 발견한다. 걸음마다 피어나는 커다란 환희와 애수는 괴물과도 같고 신과도같은 코끼리를 닮아 가고··· 한 그루에 세 빛깔로 피어난 복숭아꽃들처럼 가지런히할 수 없어 아름다운 이들의 노래. 신비와 환희가 가득한 야행의 끝에서 그들은 무엇을 만나게 될까. (출처=티켓링크)

 

림보

저도 그런 분위기에 썩 잘 적응하는 편은 아니어가지고. 어디에 있어야 되지 이러다가 오게 되기도 해요.

 

민경

지금 대화하면서 든 생각은 그걸 즐겨보려고요. 객석 안에서 불화하고 있는 나를 느끼는 것이 기가 빨려서 못 보고 있었는데 한번 즐겨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림보

또 괜찮은 작품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근데 불화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저도 어떤 때에는 공연이 주는 정서랑 저랑 안 맞다고 느껴요. 눈이 너무 건조해서 멍때리는데 뒤에서 막 울고 있고. 촉촉한 그 흐름이 참 의아했는데 객석에서 감명받아 하고···

 

민경

맞아. 그런 작품 있어요. 근데 그랬을 때 또 자기 불쾌감이 드는 것은 내가 이들을 관찰자 입장에서 본다는 거예요. 스스로가 좀 역겹다.

 

림보

저도요. 내가 느낀 건 맞고 저 사람이 우는 건 틀렸다는 식의 생각은 좀 아니잖아요.

 

민경

그러니까요. 왜 울어 이렇게 생각하는··· 야 강민경 경솔해!

 

림보

처음에 팬층이 있는 공연 보러 가서 여기도 아이돌 팬덤에 준하거나 더 딥한 수준의 어떤 문화가 있길래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또 출연진을 만날 수가 있잖아요. 퇴근길이라는 거 처음에 되게 신기했어요.

 

민경

연출을 붙잡는 경우는 없어요?

 

림보

없는 것 같아요.

 

민경

저도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또 비-컴퍼니 극에서는 왜 그런 종류의 덕질이 발생하지 않는지가 난 궁금해요.

 

림보

아예 없진 않다고 알고 있긴 한데.. 예를 들어 좀 인기 많은 배우의 경우요. 가끔 트위터에 끝나고 배우랑 대화한 영상 올라온 거 봤긴 했거든요. 많진 않지만요.

 

민경

최근에 배우랑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어요. 알아보면 부담스러울까 봐 그냥 말 안 하고 있다가··· ‘소통, 민경아, 소통! 좋았으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창작자에게도 이로운 것, 나에게도 이로운 것’ 싶어져서 연극 잘 봤습니다. 하고 그냥 갔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어요. 말을 걸고 그럴 마음 자체가 잘 안 들어요.

제가 자꾸 팬을 호들갑스러운 존재로 묘사하고 있잖아요. 누구님 이러면서··· 그런 내가 지금 잘못됐다고 느껴가지고 자아 분열이 계속 오고 있어요. 어려운 것 같아요.

 

림보

근데 이해가 되는데요. 심지어 저는 팬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느껴서··· 좋아한다고 할 거면 정말 그 팬들처럼 하든가, 근데 그건 또 하기 싫고, 동시에 지켜보고 있으면서요.

분열을 느껴요. 뭐 어쩔 수가 없다.

 

···

 

림보

이 모든 고민과 분열을 다 떠나서 최근에 참 좋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민경

연극을 볼 때 좋아하는 점이 처음 빠졌던 점이랑 비슷해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꾸며진 일이기도 하면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무대라는 허구 혹은 환상과 현실을 그냥 넘나든다 뭐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런 문장 수준으로 느껴진 게 아니라 정말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가끔 있단 말이죠.

예를 들어 배우가 무대 위에서 소리를 치고 있을 때 혹은 어떤 대사를 내뱉을 때, 배우가 진짜 지금 그 상황에 놓여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고를 당했다거나 아니면 당장 누군가에게 맞아서 화를 내거나 울부짖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그치만 동시에 실제로 울부짖고 있고 실제로 화를 내고 있고요.

그럴 때 어쩔 줄 모르겠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좋아서 결국 보고 있고 처음 연극의 매력을 느꼈던 것도 그거 때문이고··· 지금 계속 보는 이유가 이런 이유에서인 것 같아요.

 

림보

공감이 돼요. 배우인지 인물인지 둘 다인지 둘 다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저 사람의 말을 일단 내가 듣고 있다라는 사실이 되게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민경

맞아 정말 새삼스럽게 느껴진 것 같아요. 구자혜 연출님은 배우가 매개체로서만 존재하지 않게 하려고 되게 노력하잖아요. 그런 극에서 더 극대화되는 것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 의도하지 않는 극들에서도 이 사람이 배우로서 존재하는지 인물로서 존재하는지 혹은 그 둘 다로서 존재하는지가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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