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11.25
림보
(구글 폼에) ‘오타쿠 극을 비평하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 적어주셨잖아요. 저는 ‘오타쿠 극’을 공연을 평소에 많이 보는 사람들이 여러번 보는 작품 정도로 이해했는데, 작품 자체의 특성도 있을까요?
정현
조금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의 작품이요. 사랑 얘기를 사랑이 아닌 척, 베일 한 겹 덮어씌워 놓고 ‘예쁘죠’ 꾸며 놓은 다음 보여주는··· 근데 그걸 향유하는 사람들도 이게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보이즈 인 더 밴드(이하 보인밴)1)〉랑 비교를 해보면 보인밴은 상처를 줘요. (작품 속) 상황도 그렇고, 앉아 있는 관객한테도 상처를 주죠. 오타쿠 극들은 상처를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되게 안전하게 즐길 수 있지 않아요? 어떤 공연은 실존 인물의 삶을 가지고 와서, 그 삶을 배우의 몸에다 실어놓고 무대와 객석을 구분 지어요. 직접적으로 사랑이라고 시놉시스 어디에서도 얘기하고 있지 않음에도 배우들은 사랑을 연기하고. 관객들도 그 관계가 사랑인 걸 아는데 정작 관대(관객과의 대화)에서는 퀴어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고 이럴 때가 있잖아요. 어쩌다 보니 특정 제작사를 엄청 욕하는 기분이 드는데 저는 그런 느낌들을 총체적으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오타쿠 극이 그것보다 조금 더 큰 개념이라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대학로에 올라오는, 2번 출구와 1번 출구 사이에서 올라오는, 상업적인 자본이 들어갔으면서 회전러2)가 있는 작품들이 담백하게 생각하는 오타쿠극이에요. 그런데 좀 나쁘게 말하는 오타쿠극은 아까 언급한 사랑을 좀 예쁘게 포장해 놓은 작품도 있을 것이고요. (작품성의 측면에서) 구멍이 뻥뻥 뚫렸는데 관객한테 네가 알아서 채워봐라고 하는 작품도 있죠. 그게 또 재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순문학 좋아하는 사람이 장르 문학을 욕할 수 없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근데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라고 포장하는 작품들을 보면) 가끔 열받긴 해요. ‘아니 장난하나’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안 그래도 연극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 안에서도 엄청 갈라치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이미 분리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퀴어로서의 삶이랑 보이즈 러브 장르의 연기를 구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너무 확실하게 들어서 저도 퀴어 당사자지만 되게 화가 나고 웃겨요. 웃기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배우를 이렇게 오랫동안 해오고 나이도 꽤 있는 배우들의 발언을 들으면··· 저는 모 배우의 말을 들으면서 편지로 본인이 퀴어라고 안 밝힌 사람들을 다 헤테로라고 생각하는 것도 놀라웠고요. 두 번째로는 본인이 참여한 작품(퀴어 연극)을 왜 성다수자가 많이 향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싶었어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다를 얘기하기만 하지는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서요.
(이런 경우) 사실 그 배우들한테는 별 생각이 안 들고 다만 배우들로 인해 위로받았을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이 느꼈을 배신감에 대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림보 님은 좋아하는 배우가 따로 있으신 게 아니라 보통 다작 위주로 하시는 거죠? 저는 제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배우의 모든 걸 따라가지 않아요. 보고 싶은 작품이 올라왔는데 애호하는 사람이 있다 혹은 괜찮게 봤던 얼굴이 있다면 그쪽으로 가는 건 있어요.
1)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라이선스 연극. 지난 11월 23일 재연 공연이 막을 내렸다. 원작은 1968년 뉴욕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1960년대의 뉴욕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한 복층 아파트. 마이클은 친구 해롤드의 생일 파티를 주최하고, 룸메이트였던 도날드에 이어 에머리, 래리, 행크, 버나드 등이 차례로 모인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마이클의 대학 시절 친구 앨런이 갑작스럽게 방문하여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다. 마이클은 앨런에게 커밍아웃을 한 적이 없었고, 앨런은 마이클과 그의 친구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이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파티가 이어지고, 앨런은 에머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급기야 주먹다짐을 벌인다.
이때, 해롤드가 도착해 본격적인 생일 파티를 시작하지만 좀처럼 흥이 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을 알게 된 앨런이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마이클은 그를 붙잡으며 모두에게 ‘위험한 게임’을 제안한다.
자세한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5010449#
2) 회전+-러. 회전을 도는 관객. ‘회전을 도는’ 일은 같은 공연을 다회관람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회전문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림보
좋아하는 배우 있어요. 그런데 다회관람 자체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네요.
···
그러면 그런(말씀하신) 공연에 관한 비평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정현
지금 비평 관련 공모전에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건 있어요. 사실 그것도 비상업 공연까지는 아니에요.
국립극단에서 올린 거라. 국립극단이 올린 거랑 상업 공연이랑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쓰려는 게 하나 있기는 해요. 제가 당선이 될지 안 될지 모르니 쓰는 데 의의를 두지만요. 그 뒤로도 뭔가 앞으로 계속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대학원 입학할 때 교수님이 그러셨거든요.
‘니가 어쨌든 좋아하는 건 연극이지 않냐. 연극에 대해서 철학을 하고 싶으면 연극을 자주 못 보게 될 거다.’ 저주같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무슨 그런 말씀을 입학하고 돈 다 내고 나서 해주시나요? 했는데 진짜더라고요. 정말 못 봐요. 그래서 비평을 쓰고 싶은데 본 게 별로 없어지는 느낌이라 아쉬운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연극 비평을 아예 전공하고 싶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거든요.
저는 그래서 연극은 취미로 놓아두고 있어요. 열심히 공부하는 게 싫진 않지만 연극 비평을 쓰고 싶은데라는 이건(마음은)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림보
비평들을 조금 읽으시는 편인가요?
정현
그렇죠. 목정원 씨의 글을 제일 많이 사람들이 보잖아요. 그걸 처음에 읽었었고 그다음에 안치운 선생님 연극론도 사람들이 많이 읽더라고요. 제일 기본적인 걸 먼저 읽고 나서, 제목이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데 잠깐 검색해도 되나요?
···
『빈 공간』이라는 피터 브룩이 쓴 책이 있어요. 그것도 재밌게 읽었어요.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비평만 읽었다라고 하긴 좀 그러네요.
림보
소위 말하는 제도권 평론가들이 학술지 같은 데 싣는 글까지 보시기도 하나요?
정현
종종 관심 있는 작품들이 있으면 봐요. 아니면 (제도권 평론가들이 상업극을 보게 하고 싶었는데) 학부 때 교수님께서 〈온더비트1)〉를 저한테 추천받아서 보고 오셨거든요. 두 번 보고 오셨대요. 깜짝 놀랐어요. 나한테 말도 없이. 그렇게 보시고 나서 프랑스어로 된 작품에 대한 후기들이나 해설 같은 거를 한번 번역해서 보여주셨어요. 그런 걸 읽으면서 얘기도 하고 그랬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게 좋았어요.
예전에는 트위터 같은 데다가, 제가 보는 공연 후기를 많이 검색해봤었거든요. 많이 봤는데 요즘은 오히려 안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걸 더 좋아하는 느낌.
1) 프로젝트그룹 일다가 제작한 라이선스 연극.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비트(리듬)를 통해
세상을, 자기 존재를 표현하는
한 소년의 꾸밈없는 고백
“드럼에서 정말 최고는요. 고스트 노트가 존재한다는 거예요.
고스트 노트··· 들릴 듯 말 듯한 음이거든요.
아주아주 엄청나게 작은 음들,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데, 그런데 존재하는 거예요.“
아드리앙이 만드는 고스트 노트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아드리앙은 엄마의 걱정, 베르나르 아저씨의 분노,
친구들의 비웃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 역시 아드리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린 일상의 소리, 할머니가 남긴 LP 음악 등을 통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덮는 소리’, ‘비트(리듬)’를 발견한다.
그 비트(리듬)는 아드리앙에게 그만의 세상을 선물한다.
그리고 아드리앙은 그 우주 속에서 찬란히 빛난다.
우리가 그를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않더라도.
자세한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5008491
림보
저는 비평 잡지 목차만 읽을 때도 있거든요. 근데 아예 범위가 정해져 있는 느낌이긴 했어요.
프린지까지는 안 가고, 또 해븐 마니아까지도 잘 안 가고. 이런 식으로요.
정현
권위 있다고 여겨지는 분야들, 예를 들어서 철학에서는 연극 얘기 진짜 안 나오거든요.
최근에 들뢰즈에 대한 예술론 책이 나왔어요. 『비평가 들뢰즈』라는 책이요. 거기에도 연극 얘기는 없어요. 들뢰즈가 연극 얘기를 안 했기 때문이겠죠. 근데 연극 얘기를 빼놓고 쓸 수가 있나요? 예술론을 다룬다고 할 때 연극을 빼는 건···
림보
영화보다 더 오래된 거 아닌가요?
정현
그러니까요.
림보
오타쿠 극 중에 좀 딥하게 말해보고 싶은 작품 있으신가요?
정현
좋아했던 오타쿠 극들 얘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했던 건 〈히스토리 보이즈1)〉 〈알 앤 제이2)〉 〈보이즈 인 더 밴드〉 이고요.
그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친구들이랑 얘기하다가 나온 건데 사람들이 〈히스토리 보이즈〉의 메시지가 좋다는 점과 작품이 인생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하는 것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근데 여기에서도 아예 그룹이 달라져요. 그러니까 ‘히스토리 보이즈는 정말 최고였어요. 제 인생 연극이에요.’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과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동인을 하는 사람들은 분리가 되어 있는 거죠. 물론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있고요.
최근에 모 배우들의 커튼콜 사진을 봤는데 (동인적으로) 너무 이상한 거예요. 이 얘기를 왜 했냐면 배우들이 동인을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누가 봐도 헤테로 같은 배우들이 하는 행동이 동인을 의식한 건지, 아니면 그냥 헤테로 남자라 그런 행동을 하는데 나만 너무 힘든 건지 구분하는 게 되게 어렵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배우를 두고 사람들이 왜 이렇게 노림수 같은 행동을 하냐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다른 사람이 보면 별로 노림수 같지 않을 수도 있고 친한가 보다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저 배우가 사랑하는 연기를 하고 있지 않다고 보지만, 또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왜 저렇게까지 사랑하지라고 생각할 수가 있고요. 작품들에서조차도 진짜 의중을 알 수가 없고 오로지 내가 해석하는 대로 보게 된다라는 점 때문에 요즘은 그런 것(동인과 동인이 아닌 이야기)들을 구분하지 않게 됐어요.
1) 노네임씨어터컴퍼니가 제작한 라이선스 연극.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초 영국 북부지방의 한 공립 고등학교 대학입시 준비반.
똑똑하지만 장난기 넘치는 8명의 남학생들이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 입학하기 위해 학업에 몰두하고 있다.
시험과는 무관한, ‘인생을 위한 수업’을 하는 낭만적인 문학 교사 헥터와 학교생활을 하던 이들 앞에, 오로지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고용된 젊고 비판적인 옥스퍼드 출신 역사교사 어윈이 등장한다.
가르치는 방식이 전혀 다른 두 선생님들 사이에서 학생들은 그들 나름의 기준을 찾으려 노력한다.
한편, 평소 헥터를 못마땅해하던 교장은 헥터에게 퇴교를 권하고, 어윈을 학생들과의 예상치 못한 관계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학생들과 삶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 선생님들. 이들의 역사는 과연 어떤 기록으로 남게 될까?
자세한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06753
2) 쇼노트가 제작한 라이선스 연극.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엄격한 규율이 가득한 가톨릭 남학교에 재학중인 네 명의 소년들은 늦은 밤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와 비밀의 장소로 향한다.
그들은 붉은 천으로 감싸 놓은 금단의 책 『로미오와 줄리엣』을 펼쳐 낭독을 시작하고, 작품 속 금지된 사랑, 폭력, 욕망의 이야기에 점차 매료된다.
학교의 규율을 어기고 역할극을 이어가던 소년들은 희곡 속 인물의 삶을 투영하며 자신들을 둘러싼 금기와 억압, 편견의 장벽을 넘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냉정한 현실의 시작을 알리는 수업 종이 울리기 전까지, 그들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을 꾸듯 스스로 창조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17766#
림보
구체적으로 〈히스토리 보이즈(이하 히보)〉를 두고 어떤 얘기 해보고 싶으세요? 말씀해 주신 것도 재밌고, 동인 문화를 말하는 글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현
〈히보〉에 아이러니한 얘기들이 많아서 훨씬 말할 만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하고, 가끔은 이걸 소비하는 나에 대한 소위 길티함 같은 것도 느끼거든요. 그치만 동시에 이건 그게 전부가 아닌데 그런 양가감정, 아이러니함들. 그것까지 되게 재밌어요.
혹시 작품 보셨나요?
림보
네. 길티라는 게 남자 배우만 많이 나와서 그런 건가요?
정현
그것도 있고요. 동인적으로도 헥터가 학생들을 만지는 건 안 되는데 어윈이 데이킨을 좋아하는 건 돼1)? 이런 느낌.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었느냐 안 반영되었느냐를 봐야 한다라고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그러면 안 되지.
그것도 있는 것 같아요. 어윈이 후천적으로 장애를 겪게 되잖아요. 그거를 내가 소재로서 나이브하게 좋아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도 들어요. 〈거미 여인의 키스〉에 그런 대사가 나오거든요.
‘내가 마르타를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마르타의 계급을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그런 얘기가 나오는데요. 생각이 너무 많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내가 좋아한다라고 했을 때 내가 순전히 이것만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이거에 개입되어 있는 요소들이 나를 자극해서 좋아하는 것일 텐데 그 요소들이 좀 부정적인 건 아닌지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길티를 종종 느끼기도 해요.
1) 극 중 교사 헥터는 학생들을 성추행하며, 학생 데이킨과 교사 어윈은 서로를 좋아한다.
림보
글 잘 쓰시는 분들, 아니면 평론하시는 분들 이런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전문가분들 이런 공연 보시는지 안 보시는지도 궁금해요. 봤으면 뭐라도 말해달라.
정현
저도 맨날 듀나1)가 〈히보〉를 봐주길 바라고 있었어요. 악플을 달든 선플을 달든 너무 재밌을 것 같아.
듀나를〈리지〉에 앉힌다2). 〈베르나르다 알바〉에 앉힌다. 이건 뭐 듀나가 알아서 잘 써주시겠죠. 하지만 듀나를〈히보〉에 앉히면요.
1) 영화평론가 겸 SF소설 작가. X(구 트위터)에 감상한 작품 후기를 재미있게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2) 관객들 사이에서 ‘앉힌다’는 공연을 봐주었으면 하는 사람(지인 등)에게 티켓을 사주는 일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듀나가 뮤지컬 〈리지〉와 〈베르나르다 알바〉를 보게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리지〉와 〈베르나르다 알바〉는 모두 여성 배우들만 출연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림보
그러니까요.
정현
전문적인 평론을 쓰시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철학 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재밌는 연극 같은 거 추천해 주면 안 되냐고 묻는 분들 계세요. 이분들의 취향에 대해서 제가 편견을 가지는 것도 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뭔가 고급문화만 좋아할 것이라는.
제가 이분(학부 시절 교수)한테 〈온 더 비트〉를 추천드렸던 건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잘 돼 있으신 분이셨고 또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시고, 당연하게도 저보다 훨씬 많은 걸 독해해 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만약에 그때 내가 좋아했던 〈히보〉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고급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런 걸 안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더 숨기고 싶어지는 느낌이에요. 난 전혀 부끄러운 게 없는데.
림보
저도요. 정보량이 서로 적은 관계에서 좋아하는 공연 뭐냐고 말할 때 비상업극 먼저 말한 적 있어요.
정현
연뮤덕 스스로도 계속 구분을 지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그렇게 구분 짓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다만 오타쿠 극을 보면서 자기 기만하는 걸 좀 안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있어요. 그러니까 ‘이건 그런 극이 아니야’라고 하거나 아니면 사랑 이야기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이 동인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경우요.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데 작품에 대한 동인은 싫다라고 하는 경우들. 아니면 나이브하게,〈거미 여인의 키스〉 관객과의 대화에 ‘이거 사랑 이야기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온 적 있거든요. 저는 ‘120분동안 뭘 보신 거죠’ 싶었어요. 물론 예시를 든 것 말고도 분명히 많은 경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게 뭔지 명확히 직면하는 게 잘 안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을 못 견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건 연뮤 제외하고도 거의 모든 장르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아요. 저도 〈히보〉 좋아하지만 제가 모르는 한계가 누군가의 눈에는 분명히 보일 것이고요. 예를 들어 마케팅의 수단으로 퀴어함이 소비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난 좋아하니까라고 생각하며 분리하려고 하는 것이 있겠죠.
좀 총체적으로 이해를 하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단점이 있다고 해서 또 하나를 불매해 버려야 된다라고 하잖아요. 근데 저는 솔직히 그게 되나 싶어요. 안 되지 않나.
림보
(말씀에) 두 가지 방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제작진이 (퀴어) 베이팅을 하고 있는 것, 설명하는 자리에서 명확히 호명을 안 해준다는 것, 배우들이 선을 그어버리는 게 있다는 거죠. 아니면 관객들이 안 받아들이는. 비슷한 경우가 더 있을까요?
정현
저는 〈알 앤 제이〉가 엄청 퀴어한 얘기라고 생각했거든요.
남자 배우들 4명이 한다는 것뿐이지, 그것도 국내에서만 그래요. 성별 지칭이 없으니까요. 작품 자체에 (등장하는 성별이) 섞여 있기도 하고요. 남자 넷 여자 넷 이렇게 할 때도 있고, 남자 둘 여자 둘 이렇게 할 때도 있고. 성별에 관계없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한다라는 것도 퀴어하잖아요. 키스신이 있냐 없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 심지어 있거든요.
림보
그러면 이건 관객들이 퀴어 연극이 아니라고 생각한 경우인가요? 아니면 관련해 공식 코멘트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공연을 못 봐가지고.
정현
옛날에 이 작품이 ‘그런 게’ 아니다라고 해명한 사람들이 작가 서문에 있던 말들을 가지고 왔던 것 같은데 개정판이 나오면서 결국에는 어떻게 읽든 관계없다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되기도 했었어요1). 한 번 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요.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작가가 독해를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까지는 없다고. 물론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다라는 의도나 방향성은 본인이 가질 수 있지만 한 번 나가버린 순간··· 트위터에서도 140자 안에 말 잘못 좀 썼다고 사이버 불링 그렇게 당하잖아요. 작가가 만, 2만 글자짜리 글 써놓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안 읽었다고 속상해할 수가 있나 싶은 거예요.
그래서 작가가 그렇게 얘기를 했든 하지 않았든 퀴어적으로 독해하고 싶으면 퀴어적으로 독해하는 게 좋다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분명히 그렇게 볼 여지가 많다라고 느꼈어가지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1) 알 앤 제이의 작가 조 칼라코는 개정판 서문에서 알 앤 제이를 ‘게이 연극’이 아니라고 해왔던 이유와 변화한 생각들을 설명한다. 해당 글에서 그는 알 앤 제이를 통해 젠더 규범, 성적 지향, 성정체성을 논할 수 있다는 점, 그의 작품이 ‘게이가 된다는 것/게이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It is also about what it means to be a gay)’ 말하기도 한다는 점을 긍정한다.
‘(···) I must admit that Mr. Clum was right when he said that I was afraid of my play being labeled a gay play. (···) For eighteen years I’ve been refusing to say the word ‘gay’ in regards to my play R&J. I passionately stated that the piece had nothing to do with being gay. I proudly said it was about ‘the human experience’. It was about gender roles. It was about unearthing and highlighting the passion and violence in Shakespearer’s text. It was about the transformative power of art. It was about what it means to be a young. It was about what it means to be in love. It was about what it means to be in lust. It was about what it means to be a man. Well, guess what? It is also about what it means to be gay.’
‘(···) 내 연극이 게이 연극으로 분류되는 것을 내가 두려워한다고 클럼 씨가 말했을 때 그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 지난 18년 동안 나는 내 연극 알 앤 제이가 ‘게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거부해왔다. 나는 이 작품이 게이가 되는 것/게이로 사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열정적으로 주장해 왔다. 나는 이 작품이 ‘인간의 경험’에 관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것은 성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담긴 열정과 폭력성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예술의 변혁적인 힘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청년(young)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남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가? 이 작품은 게이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희곡이기도 하다.’
Joe Calarco, ‘SOME (NEW) THOUGHTS FROM THE ADAPTOR/DIRECTOR’, 『Shakespear’s R&J』
*오역 및 의역 있음
림보
요새 후기 잘 안 읽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도 찾게 됐다고 했을 때 본인과 좀 안 맞는 해석을 하는 글을 본 경우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해요.
정현
전 상대 안 한다면서 넘어가는 편이긴 해요. 트위터 줄글 같은 걸로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후기를 찾아봤는데 이 배우가 감정 연기가 너무 빨라서 나와는 좀 안 맞는 것 같다, 이런 얘기가 있다면 오히려 별 생각 안 하고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기고요. 서사적으로 다르게 해석할 때에도 ‘그렇게 해서 행복하시면 괜찮죠.’ 해요.
근데 저도 처음부터 그렇게 됐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이해하고 이렇게 좋아하는 작품을 저 사람은 저렇게 이해하고 저렇게 별로 안 좋아하는 게 상처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근데 그거는 나의 일부나 내가 이해하는 세상을 저 사람은 다른 느낌으로 보고 있어서 생긴 아쉬움 같은 거였던 거지 상처라고 하긴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때는 어렸으니까 ‘헐, 상처.’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가면 갈수록 좀··· 뭐랄까요? 공부를 계속하면서 느낀 것 같기도 한데 세상에 단정 지을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 배우가 생각하는 퀴어 연기가 너무 좋고 이 사람한테서 ‘퀴톤치드1)’가 나오는 것 같아라고 얘기를 했지만 그 사람이 그냥 엘라이일 수도 있는 거고 퀴어가 아닐 수도 있겠죠. 지금은 퀴어로만 우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많잖아요. 이 사람이 이렇게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됐네, 되게 다르게 변화했네 그런 경우들이요. 그러다 보니 사람도 묵혀놓고 1년 정도 지나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작품에 대한 해석, 그걸 넘어서서 그 후기를 쓰는 사람 자체에 대한 판단도 요즘은 유보를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그렇게 받아들여지길 바라고요.
1) 퀴어+피톤치드. 퀴어의 느낌이 난다는 뜻.
림보
공감이 되네요. 온라인 커뮤니티같은 곳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지는 특징이 단정 짓는 경향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요즘 극단적인 글들을 좀 많이 봤어요.
정현
‘이런 상황이라면 난 이렇게 할 텐데’라고 하는 말도 예전에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전 진짜 상상이 잘 안돼서요. 그런 쪽으로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편인데 ‘아니 당연히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당연히 저렇게 해야지’ 라면서 엄청 싸우는 걸 보고 있으면 진짜 발 씻고 잠이나 자라 싶어져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연뮤덕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풍조인데 연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도 같아요. 공연을 보고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확증 편향이 계속 이루어지다 보니 그렇지 않을까.
림보
다양한 이야기가 유입될 만한 환경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오타쿠 극은 특히 갈수록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이 보고, 그러면 당연히 하는 얘기만 하게 되겠죠.
정현
유입이 되어도, 뭐랄까 향유하는 방식이, 연뮤덕이 작품을 향유하는 방식이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식으로 나타나요. 특정한 방법으로 후기를 써야 된다라는 양식이 있는 것처럼 쓰지 않아요?
림보
맞아요. 녹음 시작하기 전에 친구분이 트위터 연뮤덕 계정 운영하는 법 알려줬다고 하셨었잖아요.
이건 팬덤 문화가 있는 장르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네요.
정현
그래도 아이돌 팬덤은 콘서트 후기를 쓰거나, 팝업 행사에 다녀와서 후기를 쓸 때 이렇게까지 똑같은 스타일로 글이 나오지는 않잖아요.
연뮤도 물론 다르긴 하겠죠. 다르긴 하겠는데 뭐랄까 양상이 비슷한 느낌이에요. 밖에서 보면.
어떤 식으로 쓰는지 저 막 외워서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땡땡땡 자첫’ 오늘 엘리베이터 너무 안 온다 이런 얘기 쓰고, 밑에다가 오늘 감정선 미쳤어 이런 말이 나오겠죠. 감정선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제가 전까지는 2D 애니메이션 그리고 락스타들을 좋아했어요. 그쪽 장르의 덕질 방식은 진짜 별로 없고 그냥 노래 듣기. 저는 해체한 밴드를 좋아했어가지고 콘서트도 없었어요. 다 늙은이라서 내한 공연도 못 와요. 나이가 많아서. 그러니까 덕질하는 방법은 노래를 듣는다, 기사를 번역한다 끝. 재밌었다.
아니면 책을 본다 이런 거예요. 투디 장르도 되게 오래된 일본 애니메이션이라 만화책을 사서 본다. 정해진 시간에 일본 모 사이트에 들어가서 애니메이션을 본다. 재밌었다. 그림을 그린다.
이게 끝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좀 더 많이 도와줬던 것도 있는데, 하다 보니까 양식들에 금방 녹아들 수 있더라고요. 이건 트위터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그룹에 쉽게 녹아들 수가 있어요.
내가 생각하고 보는 것들이 남들과 굉장히 비슷해지고 있다라는 생각을 한번 한 뒤부터 바뀌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연뮤 좋아하게 되면 초반에는 그래요. 나 취향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아, 다 좋아하는 것 같고 다 재밌는 것 같고. 근데 그러고 한 1, 2년 지나잖아요. 그럼 스치면 다 싫어요. 다 짜증 나고. 맨날 했던 얘기 또 하고 진짜 지겨워 죽겠다. 그리고 한 번 봤던, 재미있었던 작품 영원히 얘기하게 돼요.
림보
‘창작진에게만 아름다운 작품’ 싫다고도 하셨는데 뭐가 있을까요? 싫음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정현
저 〈스타크로스드1)〉요. 이 얘기로 뭘 하고 싶은지가 안 보여서 화가 났어요. 모든 작품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안 하는데요, 마케팅도 대학로에 있는 카페 창문에다 (대사에 나오는) ‘고양이의 왕’ 이런 대사 스티커 붙여놓더라고요.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티볼트랑 머큐쇼의 러브, 퀴어(관계)를 표방하고 있고 있는데요. 어쩌자는 걸까 싶은 마음 반, 내가 여기서 뭘 느껴야 하지에 대한 공포감도 있었어요. 그리고 전반적으로 만듦새가 그렇게 좋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거든요. 감정선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훅훅 뛰는데, 고전에서 제일 중요한 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대를 가지고 있는, 성격이 굉장히 거칠고 다양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고 왜 이렇게 감정이 널뛰는지를 잘 설득시키는 일이에요. 설득을 잘해야 현대에서 좋은 재해석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작품은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원래 (영국에서) 코미디였대요. 근데 (한국에서는) 정극 비극으로 바꿔놔서 잘 모르겠다 싶었어요. 모든 방향성에서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거죠.
1) 해븐마니아(달 컴퍼니)가 제작한 라이선스 연극.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의 베로나 공국. 이곳의 두 가문
몬태규와 캐퓰렛은 서로 반목 중이다.
두 원수 집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담장 넘어 운명적 사랑을 속삭이던 그날,
담장 아래 밀회를 지켜보던
또 다른 두 사람이 있었다.
머큐쇼는 로미오를 쫓고 있던
티볼트의 주의를 돌리고자 그에게 키스하는데···
그날, 강렬했던 기억은
두 남자를 운명의 별 앞에 세운다.
자세한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yes24.com/Perf/51624
림보
저도 한 번 봤는데, 정극을 표방해 놓고 다른 장면들이랑 안 붙을 정도로 웃기게 표현되는 부분이 있어서 어색했어요.
정현
〈스타크로스트〉는 퀴어에 대한 베이팅을 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데요. 그걸 너무 적극적인 셀링 포인트로 잡아서··· 베이팅이라고 하기에는 명백하게 이거 퀴어 이야기입니다라고 얘기하고 있고··· 근데 뭔가 기묘하다. 밤티1)여서 말도 안 나오는. 무대가 못생겼어요.
1) 못생겼거나, 만듦새가 촌스러운 것.
림보
제가 크리스마스 주간에 봤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연뮤덕 아닌 것처럼 보이는 헤테로 추정 커플들이 많았어요. 어쩌다 오셨지 생각하면서 보는데 둘이 키스하는 장면이 나올 때 어떤 분들이 튀어 오르게 놀라시는 거예요. 이건 이것대로 문제더라고요. 뭐 저렇게까지 놀랄 일이람 했어요.
정현
신기하네요. 〈지킬 앤 하이드(이하 지앤하)〉에서 하이드가 루시 죽이는 건 안 놀라셨나.
또 이상했던 공연은 욕먹을 것 같지만 〈배니싱1)〉이요.
1) 네오프로덕션이 제작한 창작 뮤지컬.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경계의 순간, 새벽녘 그들의 만남
1925년 여름, 숲속 폐가.
의신과 명렬은시체를 해부하다가 케이와 마주친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일
사라지지 않는, 사라지고 있는, 사라지기 두려운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연구는 생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수년 전, 난 한 신비한 존재를 만났다.
햇빛에 피부가 타들어가는 희귀한 병을 가진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홀로 숲속 어느 폐가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 빛도, 온기도 없는 차가운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그런 그를, ‘검은 귀신’이라 불렀다.”
- 케이에 대한 연구, 김의신 -
자세한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yes24.com/Perf/52090
림보
저는 안 보긴 했어요. 정확히 무슨 내용이에요?
정현
(줄거리 설명)
이 이야기에서 제가 실망했던 점이라고 한다면··· 왜 잘 만든 작품이라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여기에서 퀴어베이팅이 심하다라고 느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명명되지만 않았을 뿐인, 찐득한 감정들이나 관계들을 자극적인 소재들만 가지고 똘똘똘똘 뭉쳐서 ‘다 죽자’ 해버리는 전개가 너무 성의 없는 거예요. 게다가 얘기가 재밌지도 않아요.
이 제작사 작품을 제가 다 안 좋아하긴 해요. 진짜 퍼스널 컬러가 안 맞는 느낌이에요. 세포 레벨에서 좀 서로 안 맞는 느낌. 이제는 이 제작사가 만든다고 하면 벌써 좀···
좋아하는 제작사는 있나? 아, 임컬쳐 좋아요.
림보
그 〈카포네 트릴로지〉 올리는 곳 맞죠.
정현
네. 임컬쳐의 모든 작품을 좋아한다라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작품들의 결 중에 제가 재밌게 볼만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이 기획사 작품이면 무조건 봐야지 이런 건 또 딱히 없어요. 사실 되게 좋아하는 컴퍼니가 있는데 망한 것 같아요. 24년도 이후로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고 있지 않네요. 노네임시어터컴퍼니라고.
림보
맞네요. 저도 좋아해요.
정현
〈히보〉 판권이 만료된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라···
림보
제가 좋아하는 〈필로우맨〉도 여기서 판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정현
〈두 개의 방〉도 여기 있고요. 저는 레드앤블루도 좋아하긴 해요.〈3일간의 비〉를 좋아했어요.
근데 약간 애증의 관계인 거 같아요.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도 그렇고. 사랑하다가 한 대 쥐어박고 싶다가 그래요. 그런데 연극, 뮤지컬 쪽만큼 제작자랑 되게 가까운 사업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이건 좀 안 좋은 건데 향유자가 제작자이기도 하고 제작자가 향유자이기도 하다는 느낌도 있죠. 그래서 좀 보는 사람만 보는 것 같아요.
림보
맞네요. 제작사 대표가 유명한 경우도 있잖아요. 랑컴퍼니의 안대수 대표님처럼요.
···
림보
예전에 아이돌 팬들을 비하하는 분위기와 그에 대한 비판들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잘 안 나오는 얘기지만요. 그런데 특정 작품을 열렬히 좋아하는 관객들은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 아직 약간 무시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이 사람들이 보는 거 어차피 상업극인데 이런 식으로.
정현
저도 그런 류의 폄훼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연극 좀 오래 봤다 하면 비상업극도 많이 보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서 상업극과 비상업극 중 비상업극이 우월하다라고 사람들이 좀 착각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중 못생긴 밤티 공연이 많은 데도요. 상업극에는 돈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엔간하면 못생긴 상업극 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어요. 못생긴 상업극은 망해서 안 보이니까요. 비상업극은 말 그대로 자본이 정말 안 들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밤티일 수도 있는 건데 뭔가 작품성과 예술성 같은 면에서 훨씬 더 높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좀 독립 영화 얘기 같지 않나요? 마블 영화 보는 사람들 무시하는 홍상수 감독 팬들처럼요.
근본적으로 남이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 좀 별말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해명을 하지 않아도 됐으면 좋겠어요. 예전엔 저도 해명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요.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다른 걸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해명이 필요 없다라는 걸 알았으면 좀 더 재밌게 뭘 좋아했었을 텐데요.
전 처음에 〈지앤하〉 볼 때 진짜 힘들었었거든요. 이 공연에 내가 좋아하는 뭔가가 있는데,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장면들이라고 할 만한 게 나오잖아요.
림보
사실 저 내용을 몰라요. 한 번만 설명해 주실래요?
정현
좋아요. 기존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내용과 비슷하긴 한데요.
뮤지컬에는 루시라는 캐릭터가 새로 나와요. 지킬 박사가 자신의 연구를 반대당하고 친구인 어터슨 박사를 클럽으로 끌고 올까 하는데요. 거기가 말이 좋아 클럽이지 사실 스트립쇼 하는 곳이에요. 데리고 가서 공연을 보는데 공연 주인공이 루시인 거죠. 지킬은 루시가 천대받는 모습을 보고 루시를 거절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몸에 실험을 하는 미친 짓을 저질러요. 거기에서 하이드가 탄생하죠. 어떻게 보면 루시가 하이드의 탄생을 앞당긴 거나 다름없어요. 지킬이 생각하는 싫은 나의 모습과 아닌 모습을 분리해 만든 게 하이드이기 때문이에요. 욕구라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비이성적인 것들, 분노, 이런 감정들이 하이드로 나타나게 된단 말이에요. 원작에서는 완전 다른 사람인 것처럼 묘사되잖아요. 몸도 완전 다르고. 뮤지컬에서는 몸이 똑같죠. 아무래도 배우가 1인 2역이니까.
전 루시가 되게 좋았어요. 근데 공연이 너무 밤티인 거예요. 내용이 이게 뭐 하자는 거지. 제가 되게 간단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작품 안에서처럼 내가 싫어하는 모습, 내가 분리해 내고 나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싶은 그런 부끄러움들, 그런 것들을 없앨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한 번씩 해보잖아요. 그런데 이걸 어떤 식으로 돌파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작품 내에서 루시만이 해낸 것 같았어요.
연뮤덕들이 지적하는 부분들은 루시의 설정이잖아요. 창녀인 거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일단 제가 봤을 때 여성혐오적인 부분에서는 루시가 창녀고 성적으로 어필하는 곡이나 장면들을 좀 줘요. 또 하이드랑 같이 부르는 넘버를 넣어서 루시가 섹슈얼한 거에 본능적으로 끌리면서도 동시에 이걸 거부해야 하는 마음을 드러내고요. 그러니까 성매매 장면이죠.
저도 어떤 부분(평가)들에는 공감이 가지만 근데 그건 루시를 피해자로만 보는 거 아닌가 싶어요. 루시는 본능을 따라갈 것인가 이성을 택할 것인가 둘 중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결국에는 차라리 그냥 내 인생 살아야지 하고 나가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말이 길어지긴 했는데 어쨌든 처음에 〈지앤하〉를 좋아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 중에 작품에 있는 비윤리적인 소재도 있었어요.
근데 그걸 몇 번씩 보면서 소재가 비윤리적이라고 안 본다, 그러니까 이 얘기가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거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이 루시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단순한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고요. 내가 이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이 작품이 달라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들이 저한테 좀 중요했어요.
그래서 아까 전에 제가 밤티 작품들을 욕해 놓긴 했지만 요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에서 뭔가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 그런 분들이 얘기를 좀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배니싱〉에서 어떤 존재적인 외로움을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그렇게 재밌진 않았다는 것뿐이죠.
···
림보
요즘 SNS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 맞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조금 있죠. 혹시 이런 안전지대에 머물지 않을 수 있는 공연이라고 하면 뭐가 있을까요?
정현
최근까지는 아니고 올해 5월에 봤던 거였요. 앙헬리카 리델1)이 한국에 왔어요. 혹시 보셨어요? 〈사랑의 죽음〉 보면서 진심으로 너무 무섭고 너무 재밌었어요. 살풀이 같았어요. 보고 나와서 친구랑 같이 걸으면서 한 말이 진짜 웃으면 안 되지만 웃음밖에 안 나온다.
리델이 정신적으로 겪는 고통들, 어떤 사람들한테는 인정받고 싶고 어떤 사람들한테는 인정받기 싫은 마음. 권위 있는 평론가들이나 철학자들한테 인정받고 싶지만 대학원생 너네들은 아는 척만 하고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면서 떠들기나 하고. 고급문화 향유한다는 사람들이 와가지고는··· 이런 거 다 싫은데 다 꺼졌으면 좋겠는데 사실 다 안 꺼졌으면 좋겠고 너무 괴로워. 이런 얘기들을 막 십몇 분 동안 계속하거든요.
그러면서 사람을 되게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나와요. 무릎에 면도칼로 상처를 내서 피를 낸다거나 옷을 벗고 나온다거나 소 시체가 무대에 떨어진다거나. 결국에는 제목이랑 연관이 돼 있거든요. 〈사랑의 죽음〉이라는 제목이요. 후안 벨몬트의 사랑의 죽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공연이 투우랑 연결이 되는데요. 내가 무언가를 너무너무 미친 듯이 사랑하면 동시에 너무너무 미워질 수도 있다는, 반대적인 개념 같지만 사실 하나로 묶여 있는 그 상태를 잘 형상화해놨다고 생각했어요. 양가감정을 확장하면서요. 보면서 상처를 받으면서도 사실 나도 어떤 건 싫었던 것 같아, 어떤 건 좋았던 것 같아 아니면 이런 작품을 봄으로써 내가 뭔가 좋은 작품을 본다는 어떤 환상에 빠지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그렇게 한 번 상처로 뒤통수를 후려 맞으니까 구마한 것 같고 좋더라고요.
힘들긴 했어요. 몸이. 2층에서 봤는데도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집에 가지 그랬던 기억이 나요.
모든 작품들이 이래야 된다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이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것들은 대부분 그 사람한테 작품이 좀 상처를 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위로만 하는 작품은 그닥 재미없지 않나요?
1) 스페인 출신의 공연 예술가. 무대 위에서 피를 내는 등 ‘불편한’ 순간을 유발하거나 과감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5월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 를 공연하기 위해 내한했다. 작품은 투우사 후안 벨몬테,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자세한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ntok.go.kr/ntok/pm/prfmng/performanceDetail.do?perfId=266794&mi=21008
림보
저도 (그런 작품) 재미없다고 느껴요. 그런 거 되게 건조하게 봐요.
정현
위로를 하려면 어쨌든 일단 상처를 제껴 봐야 되는 건데. 헤집지 않고 위로를 할 수 있다라는 건 좀 불가능하잖아요. 혹시 〈오펀스1)〉 보셨어요?
1) 레드앤블루가 제작한 라이선스 연극.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필라델피아 북부에 위치한 낡고 허름한 집에 살고 있는 고아 형제 트릿과 필립.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형 트릿은 좀도둑질로 동생 필립을 부양하며 아버지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동생에 대한 사랑과 강한 보호심, 그리고 버림받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트릿은 필립이 지식 없이 문맹으로 순수하게 살기를 강요하며, 이미 지나간 유년 시절에 동생을 가두어 그가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다.
어린 시절 알레르기 반응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필립은 자신이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해 결코 집을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외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필립은 TV 시청과 신문에 실려 있는 낱말 맞추기, 그리고 집안에 굴러다니는 오래된 책 속의 단어들에 밑줄을 치며 형 몰래 은밀한 학습을 시도한다.
한편, 트릿은 어느 날 해롤드라는 이름을 가진 시카고 갱스터를 집으로 납치해 온다.
2주 후, 해롤드와 두 형제의 이상한 동거는 시작되고,
세 사람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며 점차 가족이 되어 가는데···
자세한 공연 정보는 링크에 접속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13868
림보
봤어요.
정현
어떠셨어요?
림보
엄청난 감명을 받은 정도는 아니었어요.
정현
맞아요. 그리고 어떤 작품들에는 꼭 필요한 시기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시기에 봤으면 동의하고 감각했을 것 같은데, ‘이 시기에 보니까 나한텐 별로’인 작품이 있죠. 저는〈오펀스〉를 적절한 시기에 봤다고 생각하거든요. 2019년에 봤는데, 나이도 나이거니와 본인이 겪고 있는 상태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때 제가 가지고 있는 ‘얘를 좋아하는데 얘가 가끔은 너무 버겁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라는 걸 알면서도 안 지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되는지 잘 몰랐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버티기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에〈오펀스〉를 봤기 때문에 되게 좋다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울진 않았는데 되게 위로가 됐어요. 되게 필요한 말이었구나 나한테.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근데 또 지금 와서 〈오펀스〉를 볼래라고 하면 글쎄라는 생각이에요. 많이 안 볼 것 같아요.
왜냐면 더 이상 그런 말로 위로를 받지는 않거든요. ‘잘하고 있어’ 같은 말이요.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저 되게 잘하고 있고···’ 할 거 같아요. 하지만 그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별점을 낮게 주지 않아요. 영화 〈해피엔드〉도 저한테는 좀 그랬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보면 좋을 영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한 지 너무 오래돼서···
오히려 요즘은 〈온 더 비트〉 같은 작품들이 저한테 좋았던 것 같아요. 이번 시즌에 생각보다 무리해서 열심히 봤더라고요. 원래 이 시즌쯤에 바빠서 잘 안 보는데.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보인밴〉도 생각보다 많이 봤어요. 네 번쯤.
···
림보
좀 별개의 질문인데 녹음 전에 창작은 안 맞는다고 하셨잖아요. 왜 그렇게 느끼셨을까요?
정현
별개의 질문이 아니라 전에 했던 얘기랑 비슷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첫 번째로 저는 보는 게 좋고요. 그리고 지금은 보면서 제 안에 쌓아가는 걸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창작은 어쨌든 나를 보여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걸 할 준비가 됐냐라고 하면 일단 아니거니와, 제가 연극동아리에서 배우도 하고 회장도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 어떤 생각을 했냐면 내가 나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디서 본 배우들의 연기를 하나씩 따와서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항상 후회가 남았어요. 선배 언니들이랑 얘기하면서도 이렇게 연기할걸, 저렇게 연기할걸, 후회를 하는데 어떻게 고칠 수도 없어요. 그래서 계속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한 번만 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얘기가 나왔었어요. 작품을 써도 되지 않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세계를 만들고 싶지가 않아요.
저는 무엇보다 그냥 보기만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라고 생각해요. 북 치는 사람이 장구도 쳐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이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오로지 연극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만 있는 것도 나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창작 쪽이랑은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렇다고 아예 뭘 안 그리고 안 쓰냐 그런 건 아니거든요. 취미로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니까 그걸로 만족하는 것 같아요.
이 얘기는 연극이랑은 관계가 없을 수도 있지만 제가 중심을 잡고 나니까 연극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사라졌어요. 예전에는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는데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다 보니까요,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것들이 있고 즐거워서 하는 것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굳이 연극에서 내가 인정을 받고 싶고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 마음껏 좋아하고 싶은 거였구나 싶어요. 마음껏 좋아하려면 그걸 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근데 연극은 창작하는 분들이랑 보는 분들이랑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림보
객석 들어가면 저 빼고 다들 서로 인사하고.
정현
저는 그러면 흡연구역에 살짝 껴가지고 담배도 같이 피우면서 아 진짜요 이래요.
림보
그래도 모르실 것 같긴 해요.
저도 그런 환경을 향한 회의감 같은 게 있어요.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이 만드는 사람이고 만드는 사람이 보는 사람인 이 환경이···
그런데 최근에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분야의 글1)을 읽었거든요. 대구에서 독립 영화제를 혼자 여시는 분이었는데, 그런 곳에서도 보통 관객으로 오는 사람이 관객 지인, 아니면 초청받아 오는 영화하는 사람들, 이런 경우더라고요. 처음에는 관객 유치 때문에 고민이 있으셨다고 했는데 그분이 글에서 말씀하셨던 건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고정 관객을 만드는 것 자체가 힘이 들 수가 있다라는 지점이었어요. 그런 의미를 고려해 보면 나 빼고 관계자인 객석에서 나 잘못 온 거 같다 이런 생각은 좀 하지 말까 싶기도 해요.
1) 관객은 보고 싶어서 오는 존재가 아니다. 관계를 통해, 또는 관계에 의해 오도록 만들어진다. 부탁, 의리, 연대감, 은근한 압박까지 모든 방식이 동원된다. 티켓을 유료화하면, 관계의 밀도는 더욱 중요해진다. 무료일 때는 호의로 올 수 있지만,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 보다 강한 설득력과 신뢰가 더 필요하다. FILM IN DAEDEOK도 처음엔 단발성 행사로 출발했지만, 이후 제작 워크숍, 연기 워크숍 등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유는 분명하다. 커뮤니티가 없으면 관계는 반복되지 않고, 관계가 반복되지 않으면 관객도 반복되지 않는다. 관객은 결국 관계가 전환된 형태다. 신뢰와 감정이 쌓인 관계만이 실질적인 관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초저예산 영화제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질문은 나는 친구가 많은가? 내 친구들을 고생시켜서라도 이걸 해야 할 만큼 절박한가? 다소 기이하게 들릴 수 있지만,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질문이다. 초저예산 영화제의 기반은 결국 인간관계 자본이다.
‘나는 어떻게 다섯 번의 초저예산 영화제를 했고 아직(도) 멀쩡한 (척하고 있는)가 - 배은열 INK 대표’
정현
그렇죠. 근데 연극은 또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보는 사람마다 받는 느낌이 다 다르잖아요. 근데 보는 사람이 맨날 맨날 똑같으면 재미없지 않나요. 연극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연극을 재미있게 보려면 어떤 게 가장 장벽일까 생각했을 때··· 화장실이 너무 불편하고. 또 멀고 비싸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영화관에 비해 접근성이 그렇게 좋진 않고요.
근데 다양한 사람들이 얘기해야지 진짜 재밌는 거잖아요. 원래 오타쿠 얘기도 여러 명이서 해야 재밌는 거라고 하고요.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면 영원히 똑같은 노래 똑같은 타령만 하게 된다고요. 근데 안 그러려면 글쎄요··· 당연히 생각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 문제들을요. 왜 보는 사람만 계속 보고, 하는 사람이 보는 사람이고 이런 환경에 대해서요. 문제 제기나 의식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야 내가 재밌다니까. 연극 보고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욕도 좀 하고 그래야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환경이 지속 되는 건데.
림보
그리고 만든 사람이 동료면 나쁜 말 못하잖아요.
정현
전 그래서 남명렬 배우가 남기는 공연 후기 되게 좋아하거든요.
‘보았다라는 사실만 남겨둔다’ 이렇게 올리실 때가 있어요. 저도 이제 싫으면 그러려고요. 정말 어른의 방법으로.
개인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연극 보면서 나보다 먼저 살았고 먼저 고민했던 사람들을 보잖아요. 이야기도 그렇고 그걸 연기하는 배우들도 그렇고, 더 많은 고민을 해왔던 사람들이 나오죠. 또 좋아하는 배우들이 저보다 한참 나이도 많다 보니까 저는 선생님 같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뭔가를 보여주고, 내가 거기에서 깨달음 같은 걸 찾아내는 방식으로 뭔가 배우고 있다라는 생각을 해요. 림보 님이 진지한 얘기를 좋아한다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래서 진지한 얘기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평소에 사실 그런 생각 잘 안 하거든요. 머릿속으로. 그냥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뭐 하고 저 이거 해야 하고 끝나고 나서 집에 가서 이거 하고, 이 생각만 해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없음’ 이게 제 머릿속이에요. 그런데 성실하게 하지 않았던 생각들, 아니면 사실은 느꼈는데 언어화하지 못한 것들을 상황이나 장면으로 보면 그 상황들에서 내가 보이고,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배우게 돼요.
그래서 좋아하는 배우들은 보통 저한테 뭔가를 알려준 사람들이에요.〈테베랜드1)〉에서 강승호 배우가 엔딩 장면을 연기하는 걸2) 보고 작품에서 아쉽게 느꼈던 모든 것들이 상쇄됐어요. 초연은 마케팅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1) 쇼노트가 제작한 라이선스 연극.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극작가 'S'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감옥에 수감 중인 범죄자 '마르틴'을 만난다.
S는 마르틴과의 대화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고 내무부의 협조를 통해 무대 위 철창을 설치하는 조건으로 마르틴을 실제 무대에 올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반대 의견에 부딪혀 계획이 무산되고 그를 대신한 연기자 '페데리코'를 섭외한다.
S는 대화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틴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페데리코는 S의 이야기를 통해 마르틴에 대해 알아가며 작품을 준비한다.
한편, 페데리코가 자신을 대신해 무대에 선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르틴은 현실 속 자신과 작품 속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틴은 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작품 개막은 점차 다가오게 되는데..
자세한 공연 정보는 링크에 접속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14092#
2) 작품 말미, 주인공 마르틴은 여전히 감옥에 있지만 S가 준 태블릿을 통해 바깥 세상의 책, 그림, 영상물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마르틴이 『오이디푸스』를 읽는 엔딩 장면에서 마르틴, 페데리코 역을 맡은 강승호 배우는 의자 위에 올라가 문장들을 힘찬 느낌으로 읽었다.
림보
‘아저씨도 아버지를 사랑해요?’ 이런 대사가 카피 문구로 쓰였었죠.
저도 공연 봤는데 마지막 장면의 연기 좋았어요.
정현
네. 그게 〈온 더 비트〉 커튼콜에 라이즈업이 나오는 것과 같은 느낌1)으로 좋았어요.
〈테베랜드〉로 오랜만에 그 배우를 본 거였는데, 삶에 있는 슬픔과 기쁨이 같이 느껴졌고 사는 게 너무 좋아라고 생각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어요. 물론 제가 그때 그런 시기를 겪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 사는 게 즐거웠으면 좋겠고. 더 이상 고통을 안 느낄 수는 없겠지만, 남들이 불행하다라고 생각하거나 뒤쳐졌다라고 생각할지라도 나는 나 자신한테 좀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럴 때 그 장면을 봐서 되게 좋았어요. 다른 배우로 봤던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그때그때 다르대요. 제가 본 배우는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배우 자체도 좋아졌고요.
1) 〈온 더 비트〉커튼콜에서는 주인공 아드리앙 역을 맡은 배우가 이매진 드래곤스의 ‘Rise Up’에 맞춰 드럼을 친다. 정서가 환기되고, 배우들의 에너지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
정현
저는 아직 〈엘리펀트 송1)〉이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1) 나인스토리가 제작한 라이선스 연극.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진실은 곧 알게 될 거예요"
캐나다 브로크빌의 한 병원.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두고 의사 로렌스가 돌연 사라져버린다.
유일한 단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환자 마이클의 증언 뿐.
병원장 그린버그는 행방의 단서를 찾기 위해 마이클을 찾아오지만
마이클은 수간호사 피터슨을 경계하며 알 수 없는 코끼리 얘기만 늘어놓는데···
치밀하게 엇갈리는 세 사람의 대화가 가리키는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자세한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yes24.com/Perf/55851
림보
공감이 돼요.
좋아하는 배우가 결말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실감 나는 연기 때문에 인기가 있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어요. 그래서 만약에 좋아하는 배우가 주인공 마이클이 아닌 다른 인물(그린버그, 피터슨)을 연기한다면 아쉽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분량도 적고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정현
그것도 그건데, 마이클의 이야기에 두 사람이 그냥 이용되는 느낌이 들어요. 구조적으로 봤을 때 그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이클이 슬픈 사람이야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 두 명이 사용되는 느낌인 거예요. 주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도구적인 인물로 나오고요.
전 개인적으로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마이클을 안타까워하는 게 싫어요. 불쌍해하고 마음 아파하잖아요. 물론 저도 무섭고 슬프고, 마이클한테 기회가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죠. 근데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엄마랑 사이가 안 좋다거나 정신병원에 간 적이 있다라거나 학대를 당했다거나 그런 사람들을 덮어놓고 불쌍해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 걸 좀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림보
마이클이 가지고 있는 배경과 환경들이 다소 전형적인 상황에서, 배우가 힘들어하고 울고 그러다 끝나버리는 흐름 자체가··· 무엇을 위해 앉아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현
그걸 보는 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그거 싫어해요. 자첫러한테 아몬드 초콜릿 주는 거1).
제작사가 어디였지?
1) 〈엘리펀트 송〉공연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장난으로 아몬드 초콜릿을 선물하는 일을 말한다.
(스포일러)
작품의 주인공이 알러지를 이용해 아몬드 초콜릿을 먹고 자살하기 때문에 관객들 사이 이와 같은 문화가 생겼다.
림보
나인스토리요.
정현
가끔 이상한 연극을 가지고 오더라고요. 저 근데 〈올드 위키드 송〉은 좋아했어요.
림보
저도 좋아했어요.
···
정현
그런 것도 있어요. 〈스타크로스트〉나 〈엘리펀트 송〉 같은 작품은 좀 잘 만든 척하는 밤티라 열받는데, 〈언체인1)〉같은 작품은 밤티의 끝을 달려요. 하나의 콘텐츠 같기도 하고요.
오타쿠 극 중에 별로인데 과분한 칭찬을 받으면 열이 받지만 다들 욕하면 오히려 살짝 관심이 가잖아요. 〈언체인〉 제작사에서 올라온 게〈후크〉라는 뮤지컬이에요. 그것도 친구들이 욕을 엄청 하는 거예요. 저는 다른 것보다 웃기게 욕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궁금해졌었어요. 본인의 분노를 재치 있게 표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저는 재능이라고 봐요. 저한테는 그런 재능 없어요.
특정 불호 후기는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고, 어떤 후기는 그렇구나하고 넘기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억빠2)’하는 글이 많으면 좀 안 보는 편이긴 해요. 〈온 더 비트〉도 조금 그렇게 느꼈어요.
1) 콘텐츠플래닝이 제작한 창작 연극.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벽난로의 불이 타오르는 지하실.
납치된 듯 결박된 남자가 눈을 뜬다.
‘당신이 지은 죄를 고백해 봐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누군가가 남자에게 죄를 고백하라 이르고,
남자는 결백을 주장하며 상대의 정체를 묻는다.
하지만 그 상대는 자신이 누군지조차 기억을 잃은 듯 혼란스러워 하는데···
결박된 남자는 그가 잃어버린 기억의 실체를 알고 있는 듯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서로의 질문은 대답 없이 반복되고,
극단의 상황에서 목숨을 내건 협박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감추고 있던 비밀들을 꺼내기 시작하고,
밝혀지는 사건의 파편들 속에서 조각난 기억들이 맞춰져 간다.
자세한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0002079
2) ‘억지로 빤다’, 즉 억지로 칭찬을 한다는 뜻.
림보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저는 그 작품을 초연부터 봤는데요. 이번 시즌을 보며 ‘그 정도 아니었네’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현
‘그 정도 아니었다’라는 게 작품의 완성도 때문이에요, 아니면 배우의 연기 이야기인가요?
림보
작품의 정서가요. 이번 재연 공연을 보면서 이전 시즌과는 다르게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울 내용 아닌데 내가 울었었네’ 이랬던 것 같아요.
정현
사람 자체가 좀 바뀌었을 수도 있는 거고, 시각이라거나 상황의 영향도 있을 듯해요. 저도 〈온 더 비트〉초연을 봤으면 그렇게 안 좋아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땐 갑갑한 TOM 극장에 관객을 뒀으니까요. ‘어쩌자는 거야’라고 느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초연이 올라왔을 때 제가 되게 바빴고 엄청 힘들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훨씬 괜찮은 상태고 지향하는 바도 있어요. 이야기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보니까 훨씬 더 좋더라고요. 불호나 호를 말할 때는 그런 것도 잘 생각을 해야 해요. 내가 지금 이 이야기에 편입될 준비가 됐는지, 아니면 이 이야기는 지금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인지요. 이러다 보니까 말이 점점 없어집니다. 작품도 좀 골라서 보게 되고요. 찍먹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상태가 됐어요.
···
정현
전반적으로 보는 사람만 연뮤를 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로 팬덤의 폐쇄성도 들 수 있지 않나 싶어요. SNS 보면 (배우 퇴근길1)에서도 그렇고) 하지 말아야 할 게 너무 많잖아요.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것만 잘 지키면 되는데. 서로 너무 뭐라 하지 맙시다. 좋으면 좋은 대로 됐으면 좋겠어요.
1) 연극, 뮤지컬 현장에는 당일 공연을 마친 배우가 극장 앞에서 관객에게 인사를 하고, 질문을 받는 ‘퇴근길’ 문화가 있다. 공연 팬들이 많이 모여 있는 SNS X(구 트위터)에 ‘퇴근길을 할 때 배우에게 공연과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등의 비판 의견이 게시된 바 있다.
림보
맞아요. 공연 내용 이해 못 하는 분들에 관해서도 가끔 심한 말이 나오더라고요.
정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나 싶어요. 스트레스받을 수 있어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러려니가 되겠어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데. 예를 들어 〈온 더 비트〉 보고 나온 사람이 ‘그러면 아드리앙은 감옥에 있는 건가요1)’라고 하면 아득할 것 같아요.
근데 답답하고 짜증 나는 거랑 별개로 감방에 갈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냅두면 안 되나요. 그 사람이 좀 모를 수도 있지.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남의 후기를 안 찾아보는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화내지 이렇게 보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1) (스포일러)
〈온 더 비트〉의 주인공 아드리앙은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혀 있다. 이는 모든 이야기를 마친 아드리앙이 처음과 같은 장소(감옥)로 돌아올 때 비로소 밝혀진다. 어두운 조명, 교도관의 나레이션, ‘언제 나갈 수 있어요’ 등의 대사를 통해 그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림보
남에게 관심이 너무 많으면서 남의 얘기 안 듣는 사람들이 있죠. 잘 모르겠네요 저도. 점점 그런 글들은 안 보게 돼요.
정현
내가 존중받길 바라는데 남들을 그만큼 존중해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연뮤뿐만 아니라 다른데서도요. 내가 존중받고 싶은 방식대로 남을 존중해 주지 않는 느낌.
예를 들어서 저는 ‘너 이런 사람이잖아’라는 얘기를 듣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 그런 말을 잘 안 하거든요. 그냥 확인해 보자, 너 커피 좋아했었나?라고 묻는다거나 저번에는 너 이런 식으로 한다고 했는데 좀 바뀌었어? 이렇게 말해요. 지난번에 말했던 게 지속될 거라고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해요. 누가 평생 같은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너 맨날 지각하잖아 이런 말도 잘 안 해요. 운이 좋게도 내가 남을 그런 방식으로 대했을 때 남도 나를 그런 방식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존중하는 방법 같은 거를 엄청 강요하니까 고통스러울 때가 있죠.
이 존중의 문제가 각 장르에 적용되다 보니까 연뮤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고 아이돌 팬덤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고 하는 것 같아요. 연뮤 특성상 사람을 계속 만나니까 문제가 좀 더 커 보이는 거죠.
림보
맞아요.
정현
지금까지 했던 얘기들을 다 뭉쳐 보면 결국 연극을 어떤 식으로 소비하느냐의 얘기이기도 하네요. 이런 식으로 소비하고 향유하고, 그거 가지고 누가 소비하는지까지. 정말 철저히 창작자의 의견은 배제돼 있었어요. (웃음) 저는 창작을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연기를 해봤지만 너무너무 힘들었거든요.
림보
창작하시는 분 만나보고 싶기는 해요. 연극을 한다고 하면 어쨌든 동료 작품이든 뭐든 계속 보기도 할 테니까요. ‘보는 나’와 ‘만드는 나’가 많이 다른가 그런 것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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